소멸 위기 방언의 어원 및 문법 연구

대전과 청주의 미묘한 사투리 차이. 같은 도, 다른 억양.

info-7713 2025. 12. 16. 19:54

같은 충청도, 다른 억양.

대전과 청주의 사투리가 만들어낸 언어의 분화와 소멸 위기
지리적·사회적 배경에 따라 달라진 대전과 청주의 사투리 차이를 어미, 억양, 화법, 어휘 등 다양한 언어적 요소로 분석하고, 도시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지역 언어의 가치를 조명한다.

 

 

 



지리적 인접성과 행정 구역의 분리가 낳은 충청 방언의 내부 분화

한국어의 방언 지도를 펼쳐보면 충청도는 한반도의 허리에 위치하여 북쪽의 경기 방언과 남쪽의 전라 및 경상 방언을 이어주는 점이 지대 역할을 수행한다. 흔히 충청도 사투리라고 하면 느릿한 말투와 어미 유의 사용을 떠올리며 충청남북도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언어권으로 뭉뚱그려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언어학적인 현미경을 들이대고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산맥과 강,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의 교통 발달이 만들어낸 미세하지만 분명한 균열과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충청권의 양대 도시인 대전과 청주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역사적으로 같은 문화권을 공유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화자들이 구사하는 억양과 어휘, 그리고 문법적 선호도에서 흥미로운 차이를 보인다. 대전은 일제 강점기 철도 부설과 함께 급격하게 성장한 교통의 요지로서 남도 지역의 인구가 대거 유입되어 형성된 개방형 방언 도시라면, 청주는 오랜 세월 동안 충청북도의 행정 및 교육 중심지로서 토박이들의 언어 습관이 상대적으로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보수형 방언 도시에 가깝다. 이러한 도시 형성의 역사적 배경 차이는 언어의 진화 속도와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본고에서는 같은 충청도라는 큰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대전과 청주의 방언적 특성을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두 도시의 말씨가 어떻게 다른지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언어가 사회적 환경과 인구 이동에 따라 어떻게 적응하고 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언어학적 탐구이다. 소멸 위기에 처한 방언 연구의 일환으로서, 우리는 표준어의 확산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 미묘한 차이들을 통해 지역민들의 정체성과 언어적 생명력을 확인해 볼 것이다.

 

 

 

충청도 청주와 대전의 지리적 인접성

 


종결 어미의 음운론적 변이와 ‘-유’와 ‘-슈’의 사용 빈도 분석

충청도 방언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존대 선어말 어미 혹은 종결 어미로 쓰이는 -유의 존재다. 표준어의 해요체에 대응하는 이 -유는 문장을 부드럽게 끝맺으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충청도 특유의 온건한 정서를 대변한다. 그러나 대전과 청주의 토박이 화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진행해보면 이 -유가 실현되는 양상에서 미묘한 차이가 감지된다. 대전 방언의 경우 전라도 방언과의 접촉 빈도가 높았던 탓에, 말끝을 길게 늘이면서 -유로 끝맺는 경향이 짙은 반면, 억양의 곡선이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반면 청주 방언, 특히 청원군과 통합되기 이전의 구도심 토박이들의 화법에서는 -유보다는 -슈에 가까운 발음이 더 빈번하게 관찰되거나, -유를 발음하더라도 입술을 덜 둥글게 모으는 평순 모음화 경향이 나타나 소리가 더 건조하고 짧게 끊어지는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대전 화자는 했슈 혹은 했어유라고 대답하며 어미의 끝을 부드럽게 내리는 반면, 청주 화자는 했슈라고 짧게 끊거나 아했어와 같이 억양의 고저를 이용하여 의문형과 평서형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의문형 어미에서 대전이 그러는겨?와 같이 겨를 선호한다면, 청주 지역에서는 기여? 혹은 기야?와 같이 모음의 변화 폭이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겨가 기여의 축약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전 지역이 음운 축약을 통해 언어의 경제성을 더 빠르게 추구한 반면, 청주 지역은 원형의 음가를 유지하려는 보수성이 더 강하게 작동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교통의 발달로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섞여 살며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필요했던 대전의 도시적 특성과, 상대적으로 정주 인구의 비율이 높았던 청주의 사회적 분위기가 언어 구조에 투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간접 화법의 정서적 기제와 거절 표현에서의 화용론적 차이

충청도 방언, 그중에서도 대전과 청주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적 자산은 바로 에둘러 말하기로 대표되는 간접 화법이다. 이는 상대방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직설적인 거절이나 비판을 피하는 고도의 화용론적 전략으로 작동한다. 지역민들은 “돌 굴러가유~”라는 농담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장하거나 모호한 표현으로 갈등을 회피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 화법의 실현 방식에서도 두 도시는 미묘한 온도 차이를 보인다. 대전의 화법은 겉으로는 동의하는 척하면서 나중에 슬그머니 뜻을 철회하는 긍정형 거절의 양상을 띤다. 반면, 청주의 화법은 질문 자체를 회피하거나 반문으로 전환하여 대답을 유보하는 회피형 거절의 특성이 더 강하다. 예컨대 부탁을 받았을 때 대전 사람들은 “한번 봐서유” 혹은 “글쎄유, 되나 몰겄네유”라고 말함으로써 명확한 거절을 피하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실제로는 거절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섞여 사는 대전의 도시 특성상, 명확한 거절이 가져올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언어적 처세술로 해석할 수 있다.

청주 지역에서는 반대로, “그게 그리 되나?” 혹은 “냅둬 봐라잉”처럼 상황 자체를 객관화하거나 판단을 유보하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된다. 좁은 지역 사회 안에서 성급한 확답이 신뢰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표현의 신중함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실제 생활에서도 분명하게 느껴진다. 대전과 청주를 여행하던 중에 두 지역의 시장을 방문하여 직접 흥정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한 상인에게 물건 가격을 흥정했을 때, 상인은 “글쎄유~ 한번 봐서유~”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말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가격을 내려줄 의사가 거의 없었고,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그 가격은 어려워유”로 마무리되었다. 처음부터 명확히 거절하지 않고 여지를 주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반면, 청주 육거리 시장에서는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상인은 “냅둬 봐라~ 그 가격으론 안 돼유”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단호하고 짧았으며,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동일하게 -유 어미를 사용하긴 했지만, 말투의 억양과 끊는 방식이 달라서 더 딱딱하고 선을 긋는 느낌이 강했다. 이를 통해 청주 말투에는 신중함과 단호함이 공존한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지역 방언은 단순한 언어적 차이를 넘어,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대인관계 전략을 자연스럽게 반영한다. 대전은 상업적, 개방적 도시 구조 속에서 유연하고 타협적인 언어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면, 청주는 정주성과 내부 결속이 강한 구조 속에서 신중하고 판단 중심적인 표현 방식을 유지해온 것이다. 이 차이는 사소한 말투 하나에서 시작되어, 상대방에 대한 인식, 관계 형성의 방식, 그리고 소통의 리듬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정서적 언어 기제로 자리잡는다.

 

 

 

 


어휘 선택에 나타난 지리적 인접성의 영향과 어원적 탐구

 

어휘의 층위에서 대전과 청주의 차이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각 도시가 인접해 있는 다른 방언권의 영향력 차이에서 기인한다. 대전은 지리적으로 충청남도 공주, 논산뿐만 아니라 전라북도와도 가까워 남부 방언의 어휘가 상당수 혼재되어 있다. 반면 청주는 충청북도의 북부인 충주, 제천과 연결되며, 더 나아가 경상북도의 상주, 문경과도 인접해 있어 동남 방언의 색채가 어휘 속에 일부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에서 대전의 노년층 화자들은 아부지라는 일반적인 방언형을 주로 사용하지만, 청주의 일부 화자들, 특히 괴산이나 보은과 인접한 지역의 화자들에게서는 아배 혹은 아버이와 같이 경상도 방언이나 고어의 흔적이 엿보이는 어휘들이 채록되기도 한다. 또한 그렇다라는 긍정의 대답을 할 때 대전에서는 기여 혹은 그려가 우세한 반면, 청주에서는 야나 햐와 같이 짧고 강한 긍정사가 사용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김치를 지칭하는 어휘에서도 대전은 짠지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반면, 청주 지역에서는 짠지와 더불어 짐치라는 구개음화된 형태가 혼용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어휘의 차이는 두 도시가 행정 구역상으로는 충청도라는 하나의 범주에 묶여 있지만, 실제 언어 생활권은 교통로와 산맥을 중심으로 다르게 형성되어 왔음을 증명한다. 특히 청주 방언에 남아 있는 고어투의 어휘들은 이 지역이 외부와의 교류보다는 내부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했음을 보여주는 언어적 화석이다. 이러한 어휘들은 표준어 교육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에게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지만, 노년층의 구술 생애사 속에는 여전히 그 원형이 살아 숨 쉬고 있어 방언학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도시화와 표준어 확산에 따른 방언의 융합과 소멸 위기 진단

현대 사회로 접어들며 대전과 청주 두 도시 모두 급격한 도시화와 세종시라는 거대 행정 복합 도시의 출현으로 인해 방언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학교와 미디어를 통해 표준어를 제1언어로 습득하며, 부모 세대가 사용하던 -유나 -겨와 같은 종결 어미를 촌스러운 것으로 여기거나 유머의 소재로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대전과 청주가 가지고 있던 미묘한 억양의 차이나 어휘의 다양성은 표준어라는 강력한 용광로 속에서 희석되어 가고 있다. 대전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길게 늘어지는 말투를 사용하지 않으며, 청주의 청년들 역시 토박이 어휘 대신 서울말의 유행어를 실시간으로 받아들인다. 언어학자들은 향후 수십 년 내에 충청도 방언의 고유한 특징들이 대부분 소멸하고, 억양(Prosody)의 일부 흔적만이 남아 출신 지역을 짐작하게 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단순히 사투리가 사라지는 현상이 아니라, 지역 고유의 정서와 사고방식을 담고 있는 문화적 유전자가 소실되는 심각한 문제다. 대전과 청주의 방언 차이는 우리말이 얼마나 섬세하게 환경에 적응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자 자산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미세한 차이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텍스트 형태의 기록뿐만 아니라, 실제 화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음성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상황별 담화 분석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사회적 함의를 해석해 놓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전역 앞 시장통에서, 청주 육거리 시장 좌판에서 오고 가는 말들은 시시각각 변모하고 있다. 그 말들이 완전히 표준어의 바다에 잠겨버리기 전에, 같은 도, 다른 억양이라는 이 흥미로운 언어적 변주를 기록하는 일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인문학적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