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8 5

맛을 표현하는 방언 형용사의 미시사 배지근하다부터 개미지다까지

‘맛있다’의 획일을 넘어제주 ‘배지근하다’, 전라 ‘개미지다’, 경상 ‘깔쌈하다’, 충청 ‘슴슴하다’로 읽는 방언 미각어 미시사표준화가 지운 감각을 복원하고 언어와 미각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다미각의 빈곤과 표준어의 독재 속에서 잃어버린 맛의 지도를 찾아서인간이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은 언어라는 필터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으로 인지하는 것은 우리 언어가 그것을 일곱 가지 단어로 분절해 놓았기 때문이다. 미각의 세계 또한 마찬가지다. 혀끝에 닿는 감각은 수천수만 가지의 미세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이 풍요로운 감각의 제국은 맛있다라는 단 하나의 거대하고 납작한 단어에 의해 정복당하고 말았다. 텔레비전의 먹방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의 맛집 리뷰를 보면, 음식을 표현하는..

방언 속에 남아있는 고어의 흔적 뫼와 가람의 생존 신고 그리고 문학적 승화

뫼·가람의 귀환방언·지명 속 고어의 생존과 김유정·백석이 빚은 문학적 승화, 그리고 기록의 당위표준어가 지운 고어 ‘뫼·가람’이 방언·지명·문법 화석에 살아 있음.김유정·백석이 이를 미학으로 승화.사라지는 어휘를 디지털 아카이빙해 한국어의 뿌리·다양성 회복을 제안. 언어의 지층학 표준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은 고어의 섬들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며 소멸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중심부의 권력과 문화다. 한국어의 역사에서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을 중심으로 한 표준어는 효율성과 표준화라는 명목 아래 수많은 토박이말들을 주변부로 밀어내거나 삼켜버렸다. 특히 한자어의 유입과 근대화 과정은 순우리말 어휘가 설 자리를 급격히 축소시켰다. 산이라는 한자어가..

한국어 방언의 친족 호칭어 분화 연구: ‘아재’부터 ‘삼촌’까지, 혈연의 지도를 그리는 언어학적 탐사

‘아재’부터 ‘삼춘’까지방언 친족 호칭으로 읽는 혈연의 지도지리·유교 위계가 빚은 의미 확장과 중세어 잔존, 핵가족화로 인한 소멸 위기와 아카이빙의 당위 언어의 지층 속에 각인된 핏줄의 역사와 관계의 기하학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엄마와 아빠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외침이자 타인과 맺는 최초의 사회적 계약이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인식해야 할 세계는 단순히 부모와 자식이라는 수직적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혈연관계, 즉 친족이라는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고 그에 합당한 이름을 불러야만 비로소 한 명의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한국어, 그중에서도 각 지역의 방언에 남아 있는 친족 호칭어는 단순히 가족을 부르는 명칭의 나열..

북한이탈주민의 언어 적응과 남북한 언어의 의미론적 분화: 분단의 장벽보다 높은 마음의 장벽

남북은 같은 말을 다르게 쓴다.북한이탈주민의 언어 적응과 의미 충돌 지도‘동무·일 없다·바쁘다’의 엇갈린 뜻, 영어 남용 vs 문화어, 방언 말살의 결과를 분석하고 소통 실패를 줄일 언어 감수성·교육·『겨레말큰사전』의 필요를 제안한다.서론: 휴전선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적 이질화의 현주소.1953년 정전 협정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일곱 번 변하는 동안,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휴전선(DMZ)은 물리적인 철조망을 넘어 사람들의 혀와 뇌 속에 더 견고한 장벽을 세웠다. 바로 ‘언어의 장벽’이다. 우리는 막연히 “남과 북은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이 마주하는 첫 번째 좌절은 바로 이 ‘말’에서 온다. ..

육진 방언(함경도 북부) 연구: 중세 국어의 가장 오래된 원형과 두만강 변방의 혼종적 언어 미학

육진 방언, 중세국어의 살아있는 화석세종 사민의 흔적 위에 성조·고어를 보존하고 여진·러시아 접촉으로 혼종화된 두만강의 언어고려말에 남은 소리까지 아우르며 소멸 전 기록을 촉구하다 1. 서론: 한반도의 끝자락, 시간이 멈춘 언어의 갈라파고스 ‘육진’ 한국어의 방언 지도를 펼쳐놓고 가장 신비롭고, 가장 베일에 싸여 있으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언어적 거점을 꼽으라면 단연 ‘육진(六鎭) 방언’이다. 행정구역상으로 함경북도 동북단의 6개 지역(온성, 종성, 회령, 경원, 경흥, 부령)을 일컫는 이 ‘육진’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최북단이자,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토의 정수리다. 우리는 흔히 북한의 언어를 평양말 중심의 ‘문화어’로만 인식하지만, 평양말과 육진 방언의 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