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 방언의 어원 및 문법 연구

강원도 방언의 특이한 시제 표현 오지게와 왔당게라의 쓰임새와 언어학적 진실

info-7713 2025. 12. 10. 17:29



감자바위의 투박함 속에 숨겨진 정교한 시간의 문법


한국의 방언 지형도에서 강원도 방언은 대중들에게 다소 평면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웰컴 투 동막골 식의 순박함이나, 말끝마다 드래요를 붙이는 억지스러운 말투가 강원도 사투리의 전부인 양 인식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태백산맥의 험준한 준령과 동해의 거친 파도 사이에서 형성된 강원도 방언은, 그 지리적 환경만큼이나 독특하고 복합적인 문법 체계를 내장하고 있다. 특히 시간을 인식하고 서술하는 시제(Tense)와 동작의 양상을 표현하는 상(Aspect)의 영역에서 강원도 방언은 표준어나 타 지역 방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오지게라는 강렬한 부사적 표현과, 종종 혼용되거나 오해받기도 하는 왔당게라와 같은 종결어미의 쓰임새를 파헤쳐 보는 것은, 강원도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감각하고 기억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언어학적 열쇠가 된다.

사실 엄밀한 언어지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왔당게라는 강원도 고유의 방언이라기보다는 남부 지방(전라도)의 방언적 특성이 강한 어휘다. 그러나 언어는 행정구역의 경계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섞이는 유동체다. 특히 강원도 남부 지역(삼척, 도계, 태백 등)은 경상도 및 충청도, 나아가 과거 광산 개발 붐을 타고 유입된 전라도 이주민들의 언어가 혼재된 독특한 짬뽕 언어(Creole-like)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대중들이 오지게나 왔당게라 같은 표현을 강원도의 정서와 연결 짓는 것은, 단순한 오해라기보다는 강원도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투박한 생명력과 변방의 혼종성을 직관적으로 포착한 결과일 수 있다. 본고는 강원도 방언, 특히 영동과 영서, 그리고 탄광촌이라는 특수 지역에서 나타나는 시제와 강조의 표현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오지게라는 단어에 담긴 강원도의 혹독한 추위와 생존 본능,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고 확증하는 강원도 특유의 문법적 장치들을 비교 언어학적 관점에서 규명함으로써, 이 방언들이 가진 문법적 정교함과 인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오지게의 어원과 의미론 강원도의 추위가 빚어낸 단단한 강조의 미학

강원도 방언에서 오지게는 매우 빈번하게, 그리고 아주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는 만능 강조 부사다. "날씨가 오지게 춥다", "눈이 오지게 왔다", "밥을 오지게 먹었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단어는 표준어의 매우나 몹시로는 대체 불가능한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타격감을 전달한다. 언어학적으로 오지게는 형용사 오지다의 활용형이다. 표준어 사전에서 오지다는 "마음에 흡족하게 흐뭇하다" 혹은 "허술한 데가 없이 알차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정의된다. 그러나 강원도 방언, 특히 혹독한 겨울을 나야 하는 산간 지방에서 오지게는 긍정과 부정을 넘어선 어떤 극한의 상태(Extremity)를 묘사하는 단어로 진화했다.

강원도의 겨울은 춥다. 단순히 기온이 낮은 것이 아니라, 뼈가 시리고 살이 트는 물리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오지게는 "살이 며질 정도로 단단하게" 혹은 "빈틈없이 꽉 차게"라는 어원적 의미를 확장하여, 자연의 압도적인 힘이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 쓰이게 되었다. 예를 들어 "눈이 오지게 왔다"는 표현은 눈이 단순히 많이 왔다는 수량적 정보를 넘어, 눈이 쌓이고 다져져서 세상이 꽉 막혀버린, 그 밀도 높고 단단한 상태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전라도 방언의 허벌나게가 헐어버릴 정도로 넓고 느슨한 확장을 의미한다면, 강원도의 오지게는 안으로 응축되고 단단해지는 수축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또한 오지게는 강원도 사람들의 기질인 뚝심과도 연결된다. 강원도 사람들은 감정을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한번 마음을 먹으면 오지게 해낸다. 여기서 오지게는 야무지다, 독하다, 실속 있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어원적으로 오지다가 오(Five) 혹은 올(All)과 관련이 있다는 민간 어원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옹골차다(속이 꽉 차다)와 의미론적 친연성을 갖는다. 척박한 화전민의 삶 속에서 허술함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집을 지어도 오지게 지어야 했고, 밥을 먹어도 오지게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지게는 강원도라는 거친 풍토에서 살아남기 위해 추구해야 했던 생존의 기준이자, 그 기준을 충족했을 때 터져 나오는 만족감과 경탄의 언어다. 현대에 와서 이 단어가 젊은 층의 비속어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그 뿌리에는 강원도의 바위처럼 단단하고 옹골찬 삶의 태도가 화석처럼 박혀 있는 것이다.

 

 

 

 

 


과거 시제의 독특한 문법 왔당게라의 오해와 강원도의 진짜 과거형 -나와 -드래요

 

대중들이 흔히 강원도 사투리로 오해하거나 혼용하는 왔당게라와 같은 표현은 사실 전라도 방언의 연결어미 -당께(그러니까)와 종결어미 -라가 결합된 형태에 가깝다. 강원도 토박이 화자들은 이러한 형태보다는 -드래요, -다니, -잖소, 혹은 -나와 같은 독자적인 시제 선어말어미와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과거를 표현한다. 특히 시제(Tense)와 상(Aspect)의 관점에서 강원도 방언, 그중에서도 영동 방언의 가장 큰 특징은 의문형 어미 -나의 특수한 쓰임새다.

경상도 방언에서 밥 묵나?는 현재 시제(지금 먹느냐?)를 나타내지만, 강원도 영동 지방에서 밥 먹었나? 혹은 줄여서 밥 뭇나?는 명백한 과거 시제(Did you eat?)를 나타낸다. 즉, 형태는 같아도 지역에 따라 시제가 정반대로 해석되는 것이다. 강원도 방언에서 과거 시제 선어말어미 -었-은 종종 탈락하거나 축약되면서도, 종결어미와의 결합을 통해 과거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니가 가져갔나?"라는 문장은 "네가 가져갔느냐?"라는 과거의 사실 확인을 묻는 것이다. 이것은 강원도 방언이 중세 국어의 의문형 어미 체계를 독자적으로 계승하고 변형시킨 결과로, 인접한 경상도 방언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법적 지표다.

또한 미디어에서 희화화되는 -드래요는 사실 과거 회상이나 인용을 나타내는 증거성(Evidentiality) 어미다. -드래요는 -더라(회상) + -요(존대)가 결합한 -더래요의 변형이다. 따라서 "눈이 왔드래요"는 "눈이 왔어요(단순 과거)"가 아니라, "내가 보니 눈이 왔더라요(목격/회상)" 혹은 "사람들이 눈이 왔다고 하더라요(인용)"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강원도 화법의 특징인 간접성과 객관화를 보여준다. 자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내가 보기에 그렇더라", "남들이 그렇다더라"라는 식으로 한 발짝 물러서서 관조적으로 진술하는 태도다.

반면, 왔당게라와 같이 확신에 찬 강조의 어미는 강원도 영서 지방보다는 남부 탄광촌 지역이나 외지인과의 접촉이 많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혼종적 형태다. 강원도의 진짜 과거형은 -다니 혹은 -다마와 같이 상대방에게 정보를 확인시켜 주는 형태다. "아까 왔다니", "그랬다마"와 같은 표현은 과거의 사실을 단순히 진술하는 것을 넘어, "내 말이 맞지?"라는 확인과 동의를 구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는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정보의 정확성이 중요했던 생활 방식이 언어에 투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강원도의 과거 시제는 단순한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화자가 그 사건을 직접 목격했는지, 누구에게 들었는지, 그리고 그 사실을 상대방과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증거성 판단 시스템을 내포하고 있다.

 

 

 

 


소멸해가는 시간의 언어를 위한 변명

지금까지 강원도 방언의 시제와 강조 표현인 오지게와 시제 어미들의 언어학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강원도의 언어는 태백산맥의 굽이만큼이나 굴곡지고, 동해의 수심만큼이나 깊은 문법적 층위를 가지고 있다. 오지게라는 단어 하나에는 그 땅의 혹독한 기후를 견뎌낸 사람들의 단단한 뼈대가 들어 있고, -나나 -드래요와 같은 어미 속에는 과거를 기억하고 진술하는 그들만의 신중한 태도가 녹아 있다. 우리가 사투리라고 가볍게 넘겨버리는 이 말들 속에는, 표준어의 기계적인 시제 구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인간적인 시간의 결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화와 고령화로 인해 이러한 강원도 고유의 문법들은 빠르게 소멸하거나 오염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미디어가 재생산하는 가짜 강원도 사투리(-드래요의 남발)를 진짜인 줄 알고 모방하며, 진짜 토박이들의 정교한 시제 구분 감각은 잊혀가고 있다. 오지게라는 단어는 본래의 옹골찬 의미를 잃고 단순한 비속어로 전락하고 있다. 언어의 소멸은 곧 그 언어가 담고 있던 세계관의 소멸이다. 강원도 방언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오지게 살아가는 법을 잊고, 과거를 신중하게 회상하는 법을 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이 사라져가는 말들의 어원과 문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왔당게라가 강원도 말이냐 전라도 말이냐를 따지는 것을 넘어, 왜 사람들이 강원도 사투리에서 어떤 억세고 강한 느낌을 받는지, 그 정서적 기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언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려줄 살아있는 우물이다. 강원도의 깊은 산골에서 길어 올린 이 투박한 말들이, 삭막하고 획일화된 현대인의 언어생활에 오지게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언어는 결국 그 사람을 닮고, 그 땅을 닮는다. 강원도의 말은 강원도를 닮아 겉은 무뚝뚝해도 속은 깊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