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귓불이 따갑다’
바람의 섬이 보존한 주술 언어
신체화된 인지와 공감주술, 무속 금기·공동체 통제 메커니즘으로 말의 물리력·소문 생태를 해부하고, 현대의 언어 윤리·보존 의의를 성찰하다
방언 속에 숨은 미신과 언어의 주술성 제주 방언 '귓불이 따갑다'의 인류학적 및 언어학적 심층 분석

언어는 세계를 해석하는 주술적 도구이자 신화의 저장소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정보 교환의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투명한 창이자, 그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공포와 소망을 담아내는 거대한 신화의 저장소다. 특히 현대 과학이 지배하기 이전,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에게 언어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고 예측 불가능한 재앙을 막아내기 위한 주술적 도구였다. 우리는 흔히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것들이 사실은 고대인들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고안해 낸 나름의 논리 체계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논리 체계는 화석처럼 굳어 방언이라는 지층 속에 깊이 박혀 있다.
한국의 방언 중에서도 제주 방언은 이러한 언어의 주술성과 신화적 상상력을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고 있는 보물창고다. 1만 8천 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제주는, 육지와 격리된 지리적 환경 덕분에 샤머니즘적 세계관이 일상 언어와 분리되지 않고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육지 사람들이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하면 귀가 간지럽다고 표현할 때, 제주 사람들은 귓불이 따갑다고 표현하거나 독특한 신체 감각어들을 사용하여 타인의 시선과 말(言)의 물리적 힘을 묘사한다. 이것은 단순한 관용구가 아니다. 여기에는 말이란 곧 실체를 가진 에너지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발화가 타인의 신체에 물리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언령 신앙이 깔려 있다. 본고는 제주 방언에 남아 있는 귓불이 따갑다라는 표현을 중심으로, 신체 감각을 통해 사회적 관계와 영적 현상을 감지하려 했던 제주 사람들의 독특한 인지 구조를 언어학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심층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소멸해가는 방언의 어휘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합리성의 시대가 잃어버린 야생의 사고와 감각의 제국을 복원하는 인문학적 여정이 될 것이다.
신체화된 언어 인지 귀라는 감각 기관의 언어학적 확장과 제주 방언의 특수성
언어학에는 신체화된 인지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의 모든 추상적인 사고와 언어 표현은 결국 우리의 신체적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이다. 우리는 이해하다라는 추상적 개념을 파악하다(손으로 잡다)라는 신체 행위로 표현하고, 미래를 앞날(눈앞의 공간)로 시각화하여 표현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귀는 청각 정보를 수용하는 생물학적 기관을 넘어, 사회적 신호를 감지하고 영적인 기운을 포착하는 안테나로 확장된다. 한국어 관용구에서 귀가 얇다, 귀가 가렵다, 귀에 못이 박히다 등의 표현은 모두 귀가 외부의 정보와 타인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통로임을 상징한다.
그러나 제주 방언에서 귀와 관련된 표현은 육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촉각적이다. 육지 표준어인 귀가 간지럽다는 다소 가볍고 유희적인 느낌을 준다. 간지러움은 불쾌하기보다는 긁어주면 해소되는 가벼운 자극이다. 반면 제주 방언에서 종종 채록되는 귓불이 따갑다 혹은 귀가 화끈거린다와 같은 표현은 통각에 가까운 자극을 묘사한다. 따가움은 외부의 날카로운 공격이나 열기에 의한 반응이다. 이는 제주 사람들이 타인의 뒷담화나 비난을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나 영혼에 가해지는 실질적인 공격으로 인식했음을 시사한다.
제주 방언의 음운론적 특성 또한 이 감각을 강화한다. 제주의 된소리(경음)와 거센소리(격음) 발달은 귓불, 따갑다와 같은 단어를 발화할 때 강한 파열음과 마찰음을 동반하게 하여, 그 자극의 강도를 청각적으로도 구현해 낸다. 또한 제주어에는 귓불 외에도 신체의 미세한 부위나 감각을 지칭하는 고유어들이 발달해 있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 세계를 매우 정밀하게 감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뼈가 아리다거나 살이 떨린다는 표현들이 구체적인 기상 변화나 불길한 징조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즉, 제주 사람들에게 몸은 거대한 자연과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 생체 레이더였으며, 방언은 그 레이더가 포착한 신호들을 해독해 놓은 암호문인 셈이다. 귓불이 따갑다는 표현은 누군가 나를 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성적인 추론이 아니라, 신체적인 통증으로 먼저 감지하는 직관의 언어다.
또한 제주 화자들은 감각 표현을 문법적으로 강화하는 방식도 활용한다. 신체 감각 앞뒤에 시공간 부사나 강조 어미를 배치해 체감 강도를 조절하고, 직설적 기술 대신 추정 어미를 붙여 보이지 않는 원인을 암시한다. 예컨대 오늘따라 귓불이 뜨거워 난데없이 하는 식의 서술은 원인에 접근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배후의 존재를 전제한다. 화자는 그 전제를 공유된 상식으로 제시하여 청자의 해석 부담을 줄인다. 이러한 장치는 감각의 사사로움을 공동의 징후로 번역하는 담화 전략이며, 그 전략 덕분에 개별적 통증이 곧 공동체적 사건의 예고편으로 기능한다. 더 나아가 연령·성별에 따른 차이도 관찰된다. 장년층은 귓불을, 청년층은 귀끝이나 귓바퀴를 더 자주 언급하며, 이는 감각 위치의 미세한 변주로 사회적 거리와 비난 강도를 비유적으로 표지한다. 작은 부위의 명명에서 드러나는 이런 섬세함은 제주어의 해상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방증한다.
공감 주술의 논리와 바람의 섬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의 물리학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 황금가지에서 주술의 원리를 유사 법칙과 접촉 법칙으로 설명하며 이를 공감 주술이라 명명했다. 멀리 떨어진 대상에게 행한 행위가 보이지 않는 연결 끈을 통해 당사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다. 제주 방언의 귓불이 따갑다는 이러한 공감 주술의 논리를 완벽하게 따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나에 대해 말(에너지)을 뱉어내면, 그 말이 공간을 이동하여 나의 가장 예민한 감각 기관인 귀에 물리적 자극(따가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텔레파시의 영역이지만, 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인과관계였다.
특히 제주라는 지리적 환경은 이러한 믿음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주는 바람의 섬이다. 일 년 내내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 소리는 때로는 사람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신의 속삭임 같기도 하다. 제주 사람들은 바람이 단순히 공기의 흐름이 아니라, 영혼이나 기운을 실어 나르는 매개체라고 믿었다. 영등 할망이 바람을 타고 들어오듯, 타인의 말 또한 바람을 타고 내 귀에 닿는다. 육지에서는 말이 공기 중에 흩어지지만, 제주에서는 바람에 실려 멀리까지 전달되고 증폭된다. 따라서 누군가 나를 험담하면 그 독기 어린 말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내 귓불을 때리는 것이다.
또한 제주의 좁은 지역 사회 구조는 이러한 주술적 사고를 사회적 실재로 만들었다. 괸당 문화로 얽힌 제주 사회에서는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다. 내가 뱉은 말은 돌고 돌아 반드시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것은 물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은 이 사회적 현상을 신체적 감각으로 치환하여 표현했다. 소문이 돌아서 내 귀에 들어오기 전에, 내 몸이 먼저 그것을 감지한다고 믿음으로써 말조심을 유도하고 공동체의 긴장을 유지했던 것이다. 즉, 귓불이 따갑다는 표현은 주술적 믿음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좁은 섬 사회에서 정보가 유통되는 속도와 파급력을 두려워했던 제주 사람들의 사회적 공포가 깔려 있다. 그들에게 말은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정도가 아니라, 날개 달린 화살이 되어 내 몸에 박히는 무기였다.
여기에 시간 감각의 요소가 겹친다. 밤바람이 드세진 날, 특히 달 없는 밤에는 소문이 빨리 돈다고 여기는 인식이 퍼져 있고, 그때의 귓불 따가움은 더 쉽게 불길함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그러한 밤에 화롯불을 피우고 말수를 줄이며 신의 귀가 얇아지기를 기다린다. 바람의 방향도 해석에 포함된다. 서북풍이면 외부인의 말이, 산에서 부는 바람이면 집안의 말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구분하기도 한다. 이런 세분화는 바람의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발생지를 가늠하려는 해석 규칙이다. 실제 상호작용에서는 귓불 통증을 느낀 화자가 다음 날 우연히 전해 들은 험담을 사건의 인과로 묶으며, 개인의 체감과 공동의 소문이 하나의 내러티브로 봉합된다. 이 내러티브는 이후 재생산되며, 표현의 신빙성을 강화하는 집합기억이 된다. 결국 공감 주술은 비합리의 체계가 아니라, 작은 공동체에서 위험을 예감하고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조기경보 체계로 기능한다.
무속 신앙과 언어 금기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제주 방언의 기저에는 1만 8천 신들과 공존하며 살아온 무속 신앙의 세계관이 흐르고 있다. 제주 사람들에게 신은 저 먼 하늘에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집 안의 문지방(문전신), 부엌(조왕신), 화장실(측간신), 그리고 마을 어귀의 팽나무 아래에 늘 함께하는 이웃과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범신론적 세계관 속에서 언어는 신들을 자극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였다. 함부로 불길한 말을 입에 올리면 말이 씨가 되어 실제로 재앙이 닥친다는 언어 금기(Taboo)가 제주 방언에는 유독 발달해 있다.
예를 들어 제주 사람들은 뱀을 뱀이라 부르지 않고 칠성 눌 혹은 부군이라 높여 부르거나, 호랑이를 산신이라 불렀다. 이름을 직접 부르는 순간 그 대상이 가진 영적인 힘이 소환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귓불이 따갑다는 표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것을 넘어, 잡신이나 도깨비가 장난을 치거나 나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는 무의식적 경계심을 내포한다. 제주 무가나 본풀이를 보면 신들은 인간의 몸에 병을 주거나 고통을 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유 없이 몸이 아프거나 귓불이 화끈거리는 것은 신이 노했거나 조상이 할 말이 있다는 징조로 해석되기도 했다.
따라서 제주 사람들은 귓불이 따가울 때 단순히 누군가 내 욕을 하나 보다 하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혹시 내가 부정을 타지는 않았는지, 금기를 어기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검열하는 계기로 삼았다. 언어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동시에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할 살얼음판이었다. 이 표현 속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경외심과,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기능이 숨어 있다. 제주의 언어가 육지의 언어보다 투박하면서도 무게감이 있는 이유는, 그 말 하나하나가 신들의 눈치를 보며 신중하게 골라낸 생존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귓불의 통증은 곧 영적인 각성을 촉구하는 알람이었다.
금기를 피해 가는 회피어법도 체계적이다. 나쁜 소문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그 말 있다, 혀끝이 시끄럽다 같은 우회 표현으로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불길한 예고는 돌려 말해 예측의 책임을 분산시킨다. 실천적 처방도 뒤따른다. 아침동쪽을 향해 침을 세 번 뱉거나, 귓불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문지르며 내 이름을 세 번 속삭이는 작은 의례가 널리 수행된다. 아이가 귓불이 뜨겁다고 하면 어른은 붉은 실을 귓볼에 한 바퀴 감아 열기가 밖으로 빠지게 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상징적 행위는 실제 통증을 가라앉히는 심리적 위약 효과를 유도하며, 동시에 말의 독을 무해화하는 상징적 폐기 절차로 기능한다. 이러한 언어 금기와 의례는 신성 모독의 위험을 줄이는 안전장치이자, 말의 부정적 파급을 통제하는 사회적 기술이다. 금기가 단순 억압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위험 관리 프로토콜이었다는 점에서 그 합리성을 재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공동체적 감각의 공유와 사회적 통제 메커니즘
언어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이다. 제주 방언의 신체 감각어들은 개인의 생물학적 감각을 공동체의 사회적 감각으로 확장시키는 기능을 수행했다. 귓불이 따갑다는 표현이 관용구로 굳어졌다는 것은, 제주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이러한 신체적 경험과 그에 대한 해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일종의 집단 최면이자 사회적 통제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
제주도와 같은 고립된 도서 지역 공동체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내부의 분열이다. 뒷담화와 비방은 공동체의 결속을 해치는 가장 큰 적이다. 이때 누군가 내 욕을 하면 귀가 아프다는 미신적 믿음은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도덕적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남을 욕하고 싶어도 그 사람의 귀가 따가울 것을 염려하게 되고, 반대로 내 귀가 따가우면 내가 남에게 원한 살 짓을 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즉, 이 비과학적인 미신은 과학보다 더 효율적으로 구성원들의 도덕성을 관리하고 갈등을 예방하는 사회적 장치였던 셈이다.
또한 이것은 피해자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는 기제이기도 했다. 이유 없이 비난받거나 소외당할 때, 귀가 따갑다는 감각을 통해 나는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비록 그것이 악의적 연결일지라도)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민간요법처럼 내 이름을 부르거나 침을 바르는 행위를 통해 그 부정적 기운을 해소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개인이 겪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문화적으로 해소하는 치유의 의례였다. 제주 방언은 이처럼 개인의 신체를 사회적 공공재로 활용하여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했다. 나의 귀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여론을 감지하는 공공의 수신기였던 것이다.
현대 환경에서도 그 기능은 변형되어 지속된다. 온라인 소문이 번지는 속도가 바람보다 빠른 시대에, 귓불이 따갑다는 말은 디지털 악평의 조짐을 은유하는 안전어로 재사용된다. 사람들은 직접 지목을 피하면서도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오늘 귀끝이 묵직하다 같은 완곡한 표현을 쓰고, 그 표현은 즉각적인 마녀사냥을 억제하는 완충 장치가 된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소문 경보를 유머로 포장해 긴장을 낮추고, 동시에 가해 발화를 자제시키는 억제 규범으로 전환한다. 마을 단위 행사는 협동 노동 직전 서로의 말을 거두자는 암묵 규칙을 상기시키며, 그 신호로 귓불 만지기를 단체 제스처로 쓰기도 한다. 이처럼 신체 은유와 담화 관습이 결합된 통제 메커니즘은 법이나 강제보다 부드럽지만, 관계의 균열을 조기에 봉합하는 데 실질적 효과를 낸다. 공동체는 통증의 서사를 공유함으로써 상처의 원인을 개인에게만 돌리지 않고, 말의 생태를 함께 돌보는 책임 윤리를 구축한다.
합리성의 시대에 잃어버린 야생의 감각을 찾아서
지금까지 제주 방언 귓불이 따갑다라는 짧은 문장 속에 숨겨진 인류학적, 언어학적 의미를 추적해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속설이 아니었다. 바람과 돌과 신들의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주 사람들이 고안해 낸, 세상과 소통하는 그들만의 방식이자 우주관의 축소판이었다. 그들에게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가 아니라, 물리적 실체를 가진 에너지였고, 신체는 그 에너지를 감지하는 예민한 악기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방언과 함께 이러한 야생의 감각들은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표준어의 보급과 과학적 합리주의의 확산은 귀가 따갑다는 말을 그저 관용적인 비유나 신경성 질환 쯤으로 격하시켰다. 우리는 더 이상 바람 소리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귓불의 통증에서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진보일까, 아니면 상실일까. 우리는 언어의 명확성을 얻은 대신,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되는 끈을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귓불이 따갑다는 제주 방언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감각의 회복을 요청한다. 그것은 타인과 내가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유기체임을 자각하게 하고, 나의 말이 타인에게 물리적인 아픔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디지털 네트워크로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지만, 정작 바로 옆 사람의 마음은 읽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제주 방언의 이 투박한 미신은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한 관계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방언을 보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박물관에 단어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언어가 품고 있던 세계관, 즉 인간과 자연과 초월적 존재가 하나로 어우러졌던 그 총체적인 삶의 방식을 기억하는 것이다. 귓불이 따갑다는 말이 제주 할머니들의 입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그 말속에 담긴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메말라가는 우리의 언어와 삶에 다시금 신화적 상상력의 피를 돌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리는 제주 방언이라는 오래된 집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예민한 귀와 뜨거운 심장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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