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같은 말을 다르게 쓴다.
북한이탈주민의 언어 적응과 의미 충돌 지도
‘동무·일 없다·바쁘다’의 엇갈린 뜻, 영어 남용 vs 문화어, 방언 말살의 결과를 분석하고 소통 실패를 줄일 언어 감수성·교육·『겨레말큰사전』의 필요를 제안한다.
서론: 휴전선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적 이질화의 현주소.
1953년 정전 협정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일곱 번 변하는 동안,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휴전선(DMZ)은 물리적인 철조망을 넘어 사람들의 혀와 뇌 속에 더 견고한 장벽을 세웠다. 바로 ‘언어의 장벽’이다. 우리는 막연히 “남과 북은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이 마주하는 첫 번째 좌절은 바로 이 ‘말’에서 온다. 그들에게 한국어(남한어)는 모국어이면서 동시에 외국어다. 발음이 다르고, 어휘가 다르며, 무엇보다 단어 하나에 담긴 ‘의미의 지평(Semantic Horizon)’이 완전히 갈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언어학에서 ‘의미론적 분화(Semantic Shift)’란, 동일한 어원을 가진 단어가 시간의 흐름이나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남북한의 언어 차이는 단순한 사투리의 차이가 아니다. 사투리는 지역적 특색을 반영할 뿐 서로의 의사소통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북한의 언어는 지난 70년간 상이한 정치 체제(자유민주주의 vs 사회주의)와 사회 구조 속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북한에서는 언어가 체제 유지와 혁명 과업 수행을 위한 강력한 ‘무기’로 개조되었고, 남한에서는 급격한 산업화와 세계화 속에서 외래어와 신조어가 범람하는 ‘용광로’가 되었다.
이로 인해 같은 단어를 쓰고 있음에도 서로 다른 개념을 떠올리는 ‘동형이의(同形異義)’ 현상이 심각해졌다. ‘동무’, ‘선동’, ‘세포’와 같은 단어들은 남한에서는 사어가 되었거나 생물학적 용어로 쓰이지만, 북한에서는 가장 일상적이고 정치적인 용어로 쓰인다. 이러한 언어적 괴리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심각한 심리적 위축과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며, 남한 사회의 편견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본고는 남북한 언어의 의미론적 분화 양상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 북한의 ‘문화어’ 정책이 어떻게 지역 방언을 말살했는지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진정한 언어적 통일의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의미론적 분화 I: 정치화된 언어. ‘동무’와 ‘아가씨’의 비극
남북한 언어의 가장 큰 간극은 어휘의 ‘정치색(Political Color)’에서 발생한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김일성 주체사상을 확립하면서 언어를 "혁명과 건설의 위력한 무기"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순우리말 어휘들에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여 의미를 변질시키거나 축소시켰다. 이 과정에서 남한에서는 아름다운 정서를 담고 있던 단어들이 북한에서는 투쟁적인 용어로, 반대로 북한에서는 긍정적인 단어들이 남한에서는 부정적인 용어로 고착화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동무’다. 본래 ‘동무’는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194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 전역에서 널리 쓰였다. "동무들아 오너라"라는 동요 가사처럼, 그것은 우정과 순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이 단어를 "노동계급의 혁명 위업을 위해 함께 싸우는 전우"라는 뜻의 호칭어(Comrade)로 공식 채택하면서, 남한에서는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남한은 ‘동무’ 대신 ‘친구(親舊)’라는 한자어를 선택했고, ‘동무’는 반공 교육 속에서 "뿔 달린 공산당"을 연상시키는 무서운 단어로 전락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와서 친근함의 표시로 "반갑습네다, 동무"라고 말했을 때, 남한 사람들이 느끼는 거부감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기인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가씨’라는 단어다. 남한에서 ‘아가씨’는 미혼 여성을 높여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다(물론 최근에는 사용 빈도가 줄고 있지만). 그러나 북한에서 ‘아가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퇴폐적인 유흥에 종사하는 여성" 혹은 "봉건 시대의 잔재"라는 부정적인 의미(Pejorative)를 강하게 내포한다. 북한이탈주민 여성에게 식당 종업원이나 택시 기사가 "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남한 화자의 ‘존대’ 의도가 북한 화자의 ‘비하’ 인식 필터를 거치며 ‘화용론적 실패(Pragmatic Failure)’를 일으키는 전형적인 사례다.
또한 ‘선동(煽動)’이라는 단어의 의미 차이도 극적이다. 남한에서 선동은 "남을 부추겨 좋지 않은 일을 하게 함"이라는 명백한 부정어다. 하지만 북한에서 ‘선동’은 ‘선전(Propaganda)’과 결합하여 "대중의 사상을 발동시키고 고무하는 고귀한 행위"로 칭송받는다. 북한 노동당에는 ‘선전선동부’라는 핵심 부서가 존재하며, "선동원이 되자"는 구호는 칭찬이다. 남한 사람이 "당신, 지금 선동하는 거야?"라고 따지면 북한이탈주민은 "내가 무슨 칭찬받을 일을 했다고 그러십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처럼 정치 이데올로기는 언어의 의미 망(Semantic Network)을 찢어놓았고, 그 틈새에서 소통의 비극은 싹트고 있다.
의미론적 분화 II: 외래어의 수용과 ‘다듬은 말’의 역설
남북한 언어 격차의 또 다른 축은 외래어의 수용 방식이다. 남한은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권 아래서 영어를 중심으로 한 외래어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반면 북한은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 차용어를 일부 받아들였으나, 1960년대 이후 주체사상을 강조하며 고유어를 중심으로 한 ‘말 다듬기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남한의 ‘영어 혼용’과 북한의 ‘인위적 고유어’가 충돌하며 어휘의 이질화가 가속화되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할 때 가장 큰 장벽으로 꼽는 것이 바로 ‘외래어(특히 영어)’다. "미팅 잡혔어?", "오늘 점심은 햄버거 세트 어때?", "스마트폰 어플 깔아봐." 일상 대화의 30% 이상이 영어식 표현으로 이루어진 남한의 화법은 그들에게 암호 해독과 같다. 북한에서는 ‘다이어트’를 ‘살까기’로, ‘주스’를 ‘과일단물’로, ‘도넛’을 ‘가락지빵’으로 순화하여 사용한다. 물론 북한 내부에서도 ‘텔레비죤’, ‘콤퓨터’ 같은 외래어가 쓰이지만, 남한처럼 ‘트렌드’, ‘라이프스타일’, ‘이슈’ 같은 추상 명사까지 영어로 대체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북한의 말 다듬기 운동이 순수하게 언어학적 동기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의 다듬은 말 중 상당수는 김일성 부자의 교시(敎示)에 따라 인위적으로 조어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전구를 뜻하는 ‘다마(일본어)’나 ‘전구(한자어)’를 없애고 ‘불알’이라고 부르도록 했다가, 어감이 좋지 않아 다시 바꾼 사례 등은 언어가 국가 권력에 의해 통제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보여준다. 흔히 알려진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는 사실 북한에서도 잘 쓰지 않고 ‘에스키모’나 ‘아이스크림’이 혼용되는데, 남한 미디어는 이를 과장하여 소개함으로써 북한 언어를 희화화하기도 한다.
반면, 남한 사람들도 모르는 북한만의 외래어도 존재한다. ‘고뿌(컵 - 콥)’, ‘뜨락또르(트랙터)’, ‘꼬뮨(공동체)’ 등 러시아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이다. 또한 ‘소학교(초등학교)’, ‘중학교(중·고등학교)’와 같은 학제 용어의 차이도 혼란을 준다. 남한 의사가 북한이탈주민 환자에게 "알레르기가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북한에서는 독일어식 발음인 ‘알레르기’ 대신 라틴어/러시아어 계열의 용어나 순화어를 쓰거나, 아예 의료 용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한의 ‘언어 사대주의(영어 남용)’와 북한의 ‘언어 폐쇄주의(인위적 순화)’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며, 통역 없이는 소통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했다.
북한의 ‘문화어’ 정책과 방언 말살: 다양성의 실종
우리는 흔히 북한말을 ‘평양 사투리’ 정도로 이해하지만, 엄밀히 말해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Munhwa-eo)’는 자연 발생적인 방언이 아니다. 1966년 김일성은 "표준어라는 말은 서울말을 표준으로 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해석될 수 있다"며, 평양말을 중심으로 노동계급의 계층적 지향을 반영하여 언어를 다듬으라고 지시했다. 이것이 바로 ‘문화어’의 탄생이다.
문제는 이 문화어 정책이 단순히 표준어를 제정하는 것을 넘어, ‘방언 말살 정책’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북한 정권은 각 지역의 고유한 방언을 "봉건 사회의 잔재"이자 "낙후된 문화"로 규정하고 철저히 배격했다. 학교, 방송, 영화, 문학 등 모든 공적 영역에서 방언 사용은 금지되었고, 사투리를 쓰는 것은 사상적으로 덜 개조된 것으로 간주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바로 함경도(육진) 방언과 평안도 방언이다. 앞선 섹션에서 다루었던 육진 방언(함경북도)은 중세 국어의 성조와 어휘를 간직한 귀중한 문화유산이었으나, 문화어의 강력한 보급으로 인해 북한 내에서 급격히 소멸해가고 있다. 함경도 출신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향에서도 젊은 층은 "말을 평양식으로 고치지 않으면 출세할 수 없다"는 강박 때문에 억지로 문화어를 쓴다고 한다.
문화어는 표면적으로는 평양 사투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평양 고유의 독특한 억양이나 어휘조차도 ‘혁명성’에 맞지 않으면 제거되었다. 대신 전투적이고 선동적인 억양, 김일성 일가를 찬양하기 위한 극존칭 어휘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즉, 문화어는 ‘언어 공학적으로 설계된 인공어’에 가깝다. 이로 인해 한반도 북부 지역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언어적 다양성(Linguistic Diversity)은 획일화된 전체주의 언어 밑으로 수장되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와서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며 "남조선은 말도 제멋대로다"라고 놀라는 것은, 그들이 평생 ‘하나의 정답 언어’만을 강요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언어 적응 투쟁: 이중 구속(Double Bind)과 정체성 혼란
생사를 건 탈북 과정 끝에 남한에 도착한 이들에게 언어는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전쟁터다. 그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 갈아타기(Code-switching)’를 시도한다. 북한 억양을 쓰면 "간첩 같다", "무섭다", "촌스럽다"는 차별적 시선을 받기 때문이다. 취업 면접에서, 식당 주문에서, 심지어 연애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출신 성분을 감추기 위해 입을 다물거나 서울말을 흉내 낸다. 이것을 사회언어학에서는 ‘언어적 가면 쓰기(Linguistic Masking)’라고 한다.
하지만 수십 년간 굳어진 억양과 어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남한 사람들은 미묘한 억양 차이(Intonation)만으로도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이때 북한이탈주민들은 깊은 좌절감과 함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북한말을 쓰자니 차별받고, 남한말을 쓰자니 어색한 ‘이중 구속(Double Bind)’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특히 화용론적 오해는 심각한 갈등을 낳는다. 북한어의 화법은 대체로 직설적이고 단정적이다. 반면 남한어는 완곡하고 우회적인 표현이 발달했다.
상황: 남한 사람이 밥을 사주며 "더 드실래요?"라고 권유함.
북한이탈주민: "일 없습니다." (No problem / I'm fine)
남한 사람의 해석: "일이 없다니? 백수라는 건가? 아니면 퉁명스럽게 거절하는 건가?"
북한에서 ‘일 없다’는 "괜찮다(It's okay)"라는 뜻의 가장 정중한 사양 표현이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직업이 없다" 혹은 "상관없다(Mind your business)"는 부정적 뉘앙스로 들린다. 반대로 남한 사람이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인사치레를 하면, 북한이탈주민은 이를 철석같이 약속으로 믿고 기다리다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미세한 문화적 문법의 차이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눈치 없는 사람'이나 '무례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원인이 된다.
일상 속 의미론적 충돌 사례 분석: ‘괜찮다’와 ‘바쁘다’의 역설
구체적인 단어 사용에서 발생하는 오해의 사례들을 표로 정리하여 분석해 보자. 이러한 사례들은 단순한 사전적 의미의 차이를 넘어, 삶의 환경이 언어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 어휘 | 남한에서의 의미 및 용법 | 북한에서의 의미 및 용법 | 오해 및 갈등 상황 |
| 괜찮다 | 1. 문제없다 (Okay) 2. 사양하겠다 (No thanks) 3. 그저 그렇다 (So-so) |
1. 훌륭하다 (Good/Great) 2. 문제없다 |
남: "이 옷 어때?" 북: "아주 괜찮습니다!" (칭찬) 남: "그냥 그렇다는 거야?" (실망) |
| 바쁘다 | 1. 시간이 없다 (Busy) 2. 서두르다 (Hurry) |
1. 살기 힘들다/궁핍하다 (Hard life) 2. 급하다 |
남: "요새 많이 바쁘시죠?" (덕담) 북: "나를 거지 취급 하나?" (모욕) |
| 사업 | 1. 비즈니스/영리 활동 (Business) | 1. 먹고사는 일체의 활동 / 직업 | 북: "무슨 사업 하십니까?" 남: "저 회사원인데요? 사업 안 해요." |
| 세포 | 1. 생물학적 단위 (Cell) | 1. 당 조직의 최하부 단위 2. 생물학적 단위 |
남: "세포 조직 검사를..." 북: (당 조직 감시를 떠올리며 긴장) |
| 학습 | 1. 공부/배움 (Study/Learning) | 1. 사상 교육 / 생활 총화 | 남: "오늘 학습 분위기 좋네." 북: "또 사상 검증을 하나?" |
특히 ‘바쁘다’의 사례는 가슴 아픈 분단의 현실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에서 ‘바쁘다’는 것은 능력이 있고 일감이 많다는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배급제가 붕괴되고 생존 경쟁이 치열한 북한 사회에서 ‘바쁘다’는 것은 "당장 먹을 것을 구하러 뛰어다녀야 할 만큼 쪼들린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요새 바쁘시죠?"라는 남한식 인사말이 북한이탈주민에게는 "요새도 굶고 다니냐?"라는 조롱으로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은, 언어가 사회적 결핍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통합을 향한 제언: 『겨레말큰사전』 편찬과 언어 감수성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남북한의 언어가 이토록 달라졌다는 것은, 서로의 존재 방식이 그만큼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가올 통일 시대를 대비하여, 혹은 현재 함께 살아가고 있는 3만 5천 명의 북한이탈주민과의 공존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언어적 합의’를 위한 노력이다. 2005년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해 온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그 중요한 첫걸음이다. 이 사전은 남한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 그리고 각 지역의 방언을 아우르는 통합 국어 대사전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 사업은 단순히 단어를 모으는 것을 넘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평화의 과정이다. 남한의 ‘오징어’가 북한에서는 ‘낙지’이고, 북한의 ‘낙지’가 남한에서는 ‘오징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병기하는 것. 이것이 언어 통합의 시작이다.
또한 남한 사회 내부적으로는 ‘대북 언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북한이탈주민의 말투를 개그 소재로 삼거나, 그들의 어휘를 무조건 "틀린 말"로 교정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북한말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70년의 고립 속에서도 지켜온 고유어(예: 곽밥 - 도시락)나 그들만의 정서를 담은 표현들을 존중하고, 이를 남한어와 융합하여 한국어의 어휘 목록(Lexicon)을 풍성하게 만드는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
방송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의 생활 용어가 많이 소개되었지만, 여전히 흥미 위주의 소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북한말 속에 담긴 그들의 고단한 삶과 역사적 맥락을 깊이 있게 다루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일 없다’는 말이 얼마나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말인지, ‘바쁘다’는 말이 얼마나 절박한 생존의 언어인지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과 진정한 ‘말’을 섞을 수 있다.
결론: 말의 길을 터야 마음의 길이 열린다
지금까지 북한이탈주민의 언어 적응 과정과 남북한 언어의 의미론적 분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분단 70년은 한반도의 허리만 자른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언어라는 거대한 강물도 두 갈래로 갈라놓았다. 북한의 언어는 이념의 도구로, 남한의 언어는 욕망의 도구로 변질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은 이 두 개의 언어 세계를 온몸으로 충돌하며 살아가는 ‘경계인(Marginal Man)’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혼종된 언어, 남한말과 북한말이 뒤섞인 그 불안한 문장들은 분단의 상처인 동시에, 미래의 통일 언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보여주는 미리보기(Preview)다. 통일은 정치적 선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의 농담을 이해하고, 서로의 슬픔을 같은 단어로 위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방언이 소멸해가는 시대, 북한말은 우리에게 남은 또 하나의 거대한 ‘방언’이다. 이것을 배척하고 지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의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는 퍼즐 조각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내는 일보다, 우리 마음속에 쌓인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일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밥 먹었니?"라는 남한의 인사와 "식사했슴메?"라는 북한의 인사가 서로의 밥상머리에서 자연스럽게 섞이는 그날,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광복(光復)을 맞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갈라진 민족을 다시 묶어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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