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 방언의 어원 및 문법 연구

제주 방언의 ‘상대 높임법’ 체계 심층 연구: 유교적 위계가 아닌 친족(괸당) 중심의 수평적 연대와 화법의 미학

info-7713 2025. 11. 30. 11:36

제주 방언의 상대 높임법

1. 서론: 언어의 지층 속에 숨겨진 사회적 유전자, 제주 높임법의 독자성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적 수단을 넘어,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사회적 구조,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 그리고 그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철학적 태도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한국어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높임법(Honorifics)’ 체계를 가진 언어다. 주체 높임, 객체 높임, 상대 높임으로 세분화된 문법 구조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유교적 위계질서와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문화를 대변한다. 표준어를 기준으로 할 때, 상대 높임법은 청자(듣는 이)와의 사회적 관계와 격식에 따라 ‘하십시오체’, ‘하오체’, ‘하게체’, ‘해라체’, ‘해요체’, ‘해체’ 등 6등급 체계로 나뉜다. 이는 화자와 청자 사이의 상하 관계와 친밀도를 미적분처럼 정밀하게 계산하여 발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반도 남단, 거친 바다 건너에 위치한 제주의 언어 풍경은 사뭇 다르다. 제주 방언(제주어)의 상대 높임법 체계는 육지의 그것과는 판이한 양상을 보인다. 많은 언어학자가 제주어의 높임법을 연구하며 당혹스러워하거나 매료되는 지점은, 이 체계가 육지의 수직적 위계질서로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독특한 ‘단순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어에는 육지 양반 사회의 산물인 ‘하오체’나 ‘하게체’와 같은 중간 등급의 격식체가 거의 발달하지 않았다. 대신 ‘합서체’와 ‘하우다체’라는 제주만의 고유한 문법 범주가 존재하며, 이는 그들만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인 ‘괸당’ 문화와 깊이 결부되어 있다.

‘괸당’은 혈연과 지연으로 얽히고설킨 제주의 친족 공동체를 이르는 말이다. 척박한 화산섬 환경과 잦은 외세의 수탈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제주 사람들에게, 타인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거나 혹은 나의 생존을 담보해 줄 ‘확장된 가족’이었다. 이러한 환경적, 역사적 배경은 언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주어의 높임법은 누가 누구보다 높은가를 따지는 ‘권력의 언어’라기보다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유대의 언어’에 가깝다. 본고는 제주 방언의 상대 높임법이 보여주는 문법적 특수성을 심층 분석하고, 이를 통해 유교적 가부장제가 아닌 생존을 위한 수평적 연대가 어떻게 문법 구조를 설계했는지 규명해 보고자 한다. 이는 사라져가는 방언의 기록을 넘어, 인간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문학적 여정이 될 것이다.

 

 

 

 

2. 문법적 구조와 형태소 분석: ‘합서체’와 ‘하우다체’의 이원적 체계와 그 변주

표준어의 상대 높임법이 격식체(4등급)와 비격식체(2등급)로 나뉘어 총 6등급의 복잡한 스펙트럼을 가진다면, 제주어의 상대 높임법은 그보다 훨씬 단순화된 구조를 띤다. 학자들마다 견해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제주어는 존대(존경)와 평대(하대),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반존대의 삼원 구조, 혹은 크게 보아 이원 구조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중심에는 육지에는 없는 독특한 어미인 ‘-수다/-우다’ 계열과 ‘-서/-서예’ 계열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존대 등급은 ‘합서체(Hapseo-che)’이다. 이는 표준어의 ‘하십시오체’에 대응되지만, 그 기능과 형태는 사뭇 다르다. ‘합서체’는 주로 명령형이나 청유형에서 두드러지는데, 어미 ‘-읍서/-(으)ㅂ서’가 결합하여 실현된다. 예를 들어 “이거 드십시오”를 제주어로는 “이거 드십서” 혹은 “먹읍서”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어미의 형태적 기원이다. 중세 국어의 객체 높임 선어말어미 ‘-ᄉᆞᆸ/ᄌᆞᆸ/ᄋᆞᆸ-’의 흔적이 제주어의 ‘-(으)ㅂ서’에 강력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제주어가 문법적으로 15세기 국어의 보수성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상대를 극진히 대우하는 화자의 태도가 문법적 화석으로 남아있음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제주어 높임법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하우다체(Hauda-che)’이다. 이는 표준어의 ‘해요체’와 ‘하오체’의 기능을 폭넓게 아우르는 등급이다. 주로 평서문과 의문문에서 ‘-수다’, ‘-우다’, ‘-수과’, ‘-우과’ 등의 형태로 실현된다. 예를 들어 “갑니다”는 “감수다”로, “갑니까?”는 “감수과?”로 표현된다. 여기서 ‘-수-’는 존경의 선어말어미 ‘-시-’가 변형되었거나, 혹은 독자적인 존대 표지인 ‘-ᄉᆞᆸ-’의 변이형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하우다체’가 격식과 비격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것이다. 육지에서 ‘하십시오체’가 주는 딱딱한 거리감이나, ‘해요체’가 주는 가벼움과는 다른, ‘점잖으면서도 친근한’ 제주 특유의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핵심이 바로 이 ‘하우다체’에 있다.

또한, 제주어에는 특이한 종결 어미인 ‘-마씀’과 ‘-양’이 존재한다. ‘-마씀’은 표준어의 ‘말입니다’ 혹은 ‘요’에 해당하는 보조사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문장 끝에 붙어 존대의 의미를 강화한다. “안 헙니다(안 합니다)”를 “안 헙니다 마씀”이라고 하면 더욱 정중하고 간곡한 표현이 된다. ‘-양’은 주로 여성 화자들이 사용하는 부드러운 의문이나 권유, 혹은 대답에서 쓰이는 어미로, 문장을 부드럽게 완충시키는 완곡어법의 기능을 한다. “알았수다 양(알겠습니다)”과 같이 쓰이며, 이는 거센 바람 소리 속에서도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려는 섬사람들의 배려가 문법화된 장치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제주어의 높임법은 복잡한 등급 나누기보다는, ‘존대(수다/우다)’와 ‘평대(다/라)’라는 명확한 대립 속에 다양한 보조사(마씀, 양, 예)를 첨가하여 미묘한 거리감을 조절하는 ‘첨가적(Agglutinative) 전략’을 취한다. 이는 화자가 청자와의 관계를 고정된 신분제가 아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문법적으로 방증한다.

 

 

 

 

3. 사라진 중간 등급: ‘하오체’와 ‘하게체’의 부재와 괸당 문화의 이분법

제주어 상대 높임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표준어의 ‘하오체(중존대)’와 ‘하게체(중하대)’에 해당하는 문법 범주가 거의 발견되지 않거나 매우 미약하다는 점이다. 육지의 언어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하오체’와 ‘하게체’는 양반 계층 내에서의 서열, 혹은 신분은 다르나 나이가 많은 하인을 대우하는 등 복잡한 사회적 층위를 반영하는 언어다. 즉, 아주 높이지도 않고 아주 낮추지도 않는, ‘어정쩡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관계에서 발달한 화법이다.

그러나 제주 사회는 이러한 ‘어중간한 관계’가 성립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바로 강력한 ‘괸당 문화’ 때문이다. 제주는 좁은 섬 사회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친척(괸당)이거나 사돈, 혹은 이웃으로 연결된다. 괸당 사회에서는 타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삼촌(삼춘)’이고, 적으면 ‘동생’이나 ‘조카’가 된다. 즉, 모든 인간관계가 가족의 확장 선상에 놓여 있다. 가족 안에서는 극도로 격식을 차리는 ‘하오체’나 상대를 적당히 대우하며 하대하는 ‘하게체’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 웃어른에게는 확실히 존대하고(합서/하우다), 아랫사람이나 친한 사이에서는 편하게 말하는(해라/반말) 이분법적 구조가 훨씬 효율적이고 자연스럽다.

더욱이 제주는 역사적으로 양반과 상민의 구분이 육지처럼 엄격하지 않았다. 유배지라는 특성상 육지에서 내려온 양반들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역민들과 섞여야 했다. 반상의 법도가 느슨해진 곳에서 신분을 가르는 복잡한 언어 체계는 생존력을 잃었다. 대신 서로의 노동력을 빌리고 빌려주는 ‘수눌음(품앗이)’ 현장에서는 직관적이고 명확한 의사소통이 중요했다. 애매하게 권위를 세우는 ‘하게체’보다는, 확실하게 존중하거나 확실하게 친밀함을 표시하는 것이 협동 노동에 유리했다.

따라서 제주어에서 ‘중간 등급의 부재’는 문법적 결핍이 아니라, 사회적 효율성의 결과이다. 제주 사람들에게 상대방은 ‘남’이 아니면 ‘우리’였다. ‘남’에게는 깍듯한 존대(하우다체)를 써서 예의를 갖추고 잠재적인 갈등을 예방하며, ‘우리’의 범주에 들어오면 과감하게 격식을 허물고 정서적 유대를 확인한다. 이러한 관계의 이분법이 문법의 이분법(존대 vs 평대)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제주의 언어가 형식적인 예법보다는 실질적인 관계 맺기를 지향해 왔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4. 수직에서 수평으로: ‘삼춘’ 호칭과 여성 중심의 언어 생태계

 

제주어의 높임법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호칭어, 특히 ‘삼춘’이라는 단어다. 표준어에서 ‘삼촌’은 아버지의 결혼하지 않은 남동생을 지칭하는 구체적인 친족 용어다. 하지만 제주에서 ‘삼춘’은 성별과 혈연을 초월한 ‘보편적 존칭 대명사’로 쓰인다. 이웃집 아저씨도, 식당 아주머니도, 길에서 만난 낯선 어르신도 모두 ‘삼춘’이다. 심지어 남녀 구분 없이 여성에게도 ‘삼춘’이라고 부른다.

이 ‘삼춘’이라는 호칭의 범용성은 제주 사회의 수평적 연대 의식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육지에서는 ‘아저씨’, ‘아주머니’, ‘어르신’, ‘김 서방’ 등으로 타인을 부를 때 상대의 성별, 나이, 결혼 유무, 사회적 지위를 끊임없이 구분 짓는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삼춘’이라는 하나의 호칭으로 모든 위계를 평탄화(Flattening)시킨다. 이는 상대를 나의 친족(괸당) 범주로 끌어들이는 언어적 포섭 행위이자, 너와 내가 남남이 아니라는 연대감의 표현이다. ‘삼춘’이라고 부르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은 무장 해제되고, 대화의 문법은 유교적 격식체에서 친밀한 공동체의 언어로 전환된다.

또한, 제주의 독특한 여성 중심 문화, 즉 해녀 사회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제주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경제 활동의 주축을 담당했던 모계적 성격이 강한 사회다. 해녀 공동체는 나이보다는 ‘물질 실력(상군, 중군, 하군)’에 따른 위계가 존재했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바다에서의 작업은 강력한 동료애를 요구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들의 언어는 권위적이기보다는 공감적이고 협력적인 방향으로 발달했다. 제주어의 상대 높임법에서 부드러운 권유형 어미나, 감정을 공유하는 종결 어미가 발달한 것은 여성 화자들의 영향력이 언어 전반에 스며든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육지의 언어가 남성 중심의 사랑방 문화와 관료 사회에서 다듬어지며 수직적 위계를 강화했다면, 제주의 언어는 여성들의 물질 작업장과 부엌, 그리고 밭일터에서 다듬어지며 수평적 유대를 강화했다.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서로의 안위를 묻고 노동을 독려해야 했던 제주 여성들에게, 복잡한 격식체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어미)’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제주어의 높임법이 투박하면서도 다정하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5. 화용론적 분석: 바람의 언어와 비언어적 높임 전략

 

언어학의 한 분야인 화용론(Pragmatics)은 문맥 속에서의 언어 사용을 연구한다. 제주어의 높임법은 문법적 표지뿐만 아니라, 억양(Intonation)과 비언어적 요소(Non-verbal cues), 그리고 생략(Ellipsis)의 전략을 통해 완성된다. 제주도는 바람이 몹시 거센 섬이다. 야외에서 긴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이자, 의사 전달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제주어는 짧고 간결하다. “어디에 가십니까?”라는 긴 문장 대신 “어디 감수과?” 혹은 더 짧게 “어디?”라고 묻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높임법의 공백을 채우는 ‘억양’이다. 문법적으로는 반말처럼 들리는 짧은 문장이라도, 말끝을 부드럽게 올리거나 특정 성조를 섞어 발화하면 충분한 존대의 의미를 전달한다. 제주어 화자들은 상대방의 눈을 맞추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거나, ‘예’ 혹은 ‘양’과 같은 담화 표지(Discourse Marker)를 적절히 섞어 씀으로써 문법적 격식을 대신한다. 이는 고맥락 문화(High-context culture)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깊은 유대감이 전제되어 있기에 가능한 화법이다.

또한, ‘반어적 높임’의 전략도 흥미롭다. 제주 어르신들이 아랫사람이나 친한 사람에게 “무사 경 햄시니?(왜 그렇게 하니?)”라고 핀잔을 주는 듯한 말투는, 실제로는 비난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투박하고 직설적이지만, 그 속에는 상대방을 내 식구처럼 챙기는 ‘속정’이 담겨 있다. 육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제주 사람들이 불친절하다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제주식 화법의 ‘겉과 속(표면적 의미와 함축적 의미)’의 괴리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문화적 차이일 뿐이다. 제주의 높임법은 혀끝에서 나오는 예의가 아니라,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관계의 진정성에 기반을 둔다.

특히 ‘가부/여부(Yes/No)’를 묻는 의문문에서 “기냐? 아니냐?”라고 묻는 대신, “기꽈?”라고 짧게 묻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존대가 성립된다. 여기서 ‘-꽈’라는 종결 어미는 ‘-습니까?’의 기능을 압축적으로 수행한다. 이 경제적인 언어 습관은 험난한 자연환경과 고된 노동 속에서 피어난 ‘생존의 미학’이다. 불필요한 수식을 걷어내고 본질만을 전달하되, 그 안에 상호 존중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제주어 높임법의 화용론적 핵심이다.

 

 

 

 



6. 결론: 표준화의 파도 속에서 ‘관계의 문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제주 방언의 상대 높임법은 단순한 사투리의 변형이 아니다. 그것은 유교적 봉건 질서가 지배하던 한반도에서, 괸당이라는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피어난 ‘수평적 연대의 언어’이자 ‘생존을 위한 실용의 문법’이었다. ‘합서체’와 ‘하우다체’로 대표되는 제주의 높임법은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관계를 확인하고, 격식을 따지기보다 마음을 전달하는 데 최적화된 체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제주어의 이 독창적인 높임법 체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표준어의 강력한 보급과 미디어의 영향, 그리고 관광지화로 인한 외지인과의 접촉 증가는 제주어의 고유한 문법을 빠르게 해체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수다’와 ‘-우다’를 구분하여 쓰지 않으며, ‘삼춘’이라는 호칭 대신 표준어식 호칭을 사용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 언어의 소멸은 곧 그 언어가 담고 있던 세계관의 소멸을 의미한다. 제주어 높임법이 사라진다는 것은, 제주 사람들이 수백 년간 지켜온 ‘평등한 공동체 의식’과 ‘끈끈한 유대감’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사라진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제주 방언의 문법을 연구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진정한 관계 맺기’의 지혜가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수직적 위계와 갑질 문화가 만연한 현대 한국 사회에서, 서로를 ‘삼춘’이라 부르며 위아래 없이 노동을 나누고, 투박한 말투 속에 깊은 정을 담아냈던 제주의 언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높임말이 상대를 억압하거나 거리를 두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따뜻한 그릇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주의 바람은 여전히 거세고, 돌담은 견고하다. 비록 언어의 형태는 변해갈지라도, 그 언어 속에 깃든 ‘수눌음’과 ‘괸당’의 정신만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 제주어의 상대 높임법은 박물관의 전시물이 아니라,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사람 냄새 나는 언어’의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육지의 복잡한 높임법에 지친 이들에게, 제주의 “혼저 옵서예(어서 오세요)”라는 말 한마디가 주는 울림이 그토록 큰 이유는, 그 말속에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환대와 평등한 존중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문헌]
김원보 (2009). 『제주어의 이해』. 제주대학교출판부. (제주어의 문법적 기초와 높임법 체계 전반에 대한 이론적 토대 제공)
강영봉 (2012).「제주도 방언의 경어법 연구」. 『한국언어문학』. (표준어와 대비되는 제주 방언 경어법의 등급 체계 분석)
정승철 (2018). 『제주도 방언의 통시적 연구』. 태학사. (중세 국어와의 연결 고리 및 역사적 변천 과정 추적)
제주학연구센터 (2020).『제주어 구술 생애사』. (실제 화자들의 발화 데이터 및 괸당 문화의 맥락 확인)
Brown, P., & Levinson, S. C. (1987). Politeness: Some universals in language usa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공손성 이론 및 체면 위협 행위 이론을 통한 화용론적 분석 틀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