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 방언의 어원 및 문법 연구

제주어 속 몽골어 차용어(Loanwords)의 어원학적 추적과 사회언어학적 고찰: 바람의 섬에 새겨진 100년의 기억

info-7713 2025. 11. 29. 10:14

1. 서론 및 역사적 배경: 탐라총관부의 설치와 ‘목호(牧胡)’의 유입, 언어 혼종의 서막

제주의 바람에는 말발굽 소리가 섞여 있다. 돌과 바람, 그리고 여자가 많다 하여 삼다도(三多島)라 불리는 제주이지만, 그 이면에는 ‘말(馬)’이라는 거대한 축이 제주의 생태계와 문화를 지탱해 왔다.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라는 속담은 조선 시대에 정착된 것이지만, 제주가 한반도 최대의 마정(馬政) 기지로 탈바꿈한 결정적 계기는 13세기 고려 말, 원(元)나라 간섭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273년, 여몽연합군에 의해 삼별초가 진압된 직후, 원나라는 제주도에 직할 통치 기구인 ‘탐라총관부(耽羅總管府)’를 설치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구역의 편입이 아니었다. 유목 민족인 몽골인들에게 제주의 드넓은 중산간 초원은 천혜의 목마장으로 비쳤고, 그들은 이곳을 일본 원정을 위한 군마 공급 기지로 낙점했다. 1276년, 원나라의 탑라치(다루가치)가 160필의 몽골 말을 들여온 것을 시발점으로, 수천 명의 몽골인 목자(牧子), 즉 ‘목호(牧胡)’들이 제주 땅을 밟았다.

이때부터 약 100년간(1276~1374) 이어진 원나라의 지배는 제주의 유전자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몽골의 말과 제주의 토종마가 교배하여 ‘조랑말’이라는 강인한 잡종 강세를 만들어냈듯, 몽골어와 제주어의 충돌은 언어적 혼종(Hybridity)을 낳았다. 지배층의 언어는 피지배층의 언어에 필연적으로 침투한다. 이를 언어학에서는 상층 기층설(Superstratum/Substratum theory)로 설명한다. 정치적, 군사적 우위에 있는 원나라의 몽골어가 ‘상층 언어’로서 제주의 토착어(기층 언어) 위에 덮인 것이다. 하지만 제주는 몽골어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다. 대신, 제주 사람들은 몽골의 선진적인 목축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그에 필요한 전문 용어들을 선택적으로 차용(Borrowing)하고 토착화(Indigenization)시켰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은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언어학적 관점에서 이 시기는 제주어의 어휘 체계가 비약적으로 확장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소, 말, 양 등 가축을 관리하는 목축 용어에서 몽골어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목호들은 제주 여인들과 통혼하며 정착했고, 그들의 언어는 가정과 일터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고려 공민왕 시절 목호의 난이 진압되며 몽골 세력은 정치적으로 축출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언어는 7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제주 할머니들의 입말 속에, 그리고 오름의 이름 속에 화석처럼 박혀 있다. 본고는 특히 말(馬)의 털색을 지칭하는 어휘들을 중심으로, 몽골어와 제주어의 음운론적 대응 관계를 추적하고, 식민의 역사가 어떻게 언어라는 그릇 안에서 용해되고 생존했는지 규명해 보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어원 찾기를 넘어, 언어가 역사의 상흔을 기록하는 방식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이다.

 

 

 


2. 말(馬) 모색(털색) 명칭의 어원학적 분석: 중세 몽골어와 제주어의 음운 대응

 

제주어에는 말의 털 색깔을 구별하는 어휘가 상상 이상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표준어권 화자들은 기껏해야 ‘검은 말’, ‘흰 말’, ‘누런 말’, ‘얼룩말’ 정도로 구분하지만, 제주의 옛 목동(말테우리)들은 수십 가지의 미세한 색채 차이를 단어 하나로 명확히 구별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들의 대부분이 13~14세기 중세 몽골어(Middle Mongolian)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음운적 대응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제주에 유입된 목축 문화가 얼마나 고도화되었는지를 방증한다. 대표적인 어휘들을 분석해 보자.

첫째, ‘가라(加羅)’와 ‘가라말’이다. 제주어에서 ‘가라’는 털빛이 온통 검은 말을 지칭한다. 이는 몽골어의 ‘카라(Qara)’에서 유래했다. 몽골어에서 ‘Qara’는 단순히 ‘검다(Black)’는 뜻 외에도 ‘강하다’, ‘순수하다’, 심지어 ‘세속적이다’라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데, 제주어에서는 ‘검은색 말’이라는 구체적인 지칭어로 의미가 축소(Semantic narrowing)되어 정착되었다. 음운론적으로 몽골어의 연구개 파열음 /q/가 제주어의 연구개 파열음 /k/ 혹은 /g/로 대응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가라, 가라” 하며 말을 부르는 소리는 700년 전 몽골 초원의 목동들이 외치던 소리와 다르지 않다.

둘째, ‘구라(仇羅)’와 ‘구라말’이다. 이는 위아래 입술이 검고 털색이 누른 말, 혹은 등줄기에 검은 선이 있는 황색 말을 뜻한다. 이 단어는 몽골어 ‘쿨라(Qula)’와 완벽하게 대응된다. 몽골어 ‘Qula’는 목과 꼬리가 검은 황갈색 말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모음의 변화다. 몽골어의 후설 모음 /u/가 제주어에서도 /u/로 유지되었으며, 유음 /l/이 제주어의 /r/ 혹은 /l/로 자연스럽게 전이되었다. 이는 차용 과정에서 큰 음운적 왜곡 없이 직수입되었음을 시사한다.

셋째, ‘적다(赤多)’ 혹은 ‘적다말’이다. 얼핏 보면 한자 ‘붉을 적(赤)’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언어학적 분석은 다르다. 이는 몽골어 ‘제르데(Jierde)’에서 온 말이다. ‘Jierde’는 붉은 밤색(Chestnut)을 띤 말을 의미한다. 몽골어의 이중모음 /ie/가 제주어에서 단모음화되거나, 혹은 몽골어의 방언형인 ‘Jerde’가 유입되어 ‘적다’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한자 차용 표기인 이두식 표기가 겹치면서 민간어원설(Folk Etymology)이 개입해 ‘붉을 적(赤)’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뿌리는 명백히 북방의 초원에 있다.

넷째, ‘공골(公骨)’ 혹은 ‘공골말’이다. 털색이 붉으면서 흰 털이 섞여 있거나, 누른색 털이 섞인 밤색 말을 뜻한다. 이는 몽골어 ‘콩고르(Qonggor)’에서 유래했다. ‘Qonggor’는 몽골 민요나 서사시에 자주 등장하는 말 색깔로, 부드러운 밤색(Fallow)을 의미한다. 제주어 ‘공골’은 원어의 /q/가 /k/~/g/로, 비음 /ng/이 그대로 유지되며 정착된 사례다.

다섯째, ‘유원(柳原)’과 ‘유월’이다. 갈기가 검고 몸통은 붉은 말을 칭하는데, 이는 몽골어 ‘계에르(Je'er)’ 또는 ‘계레(Je'ere)’와 연관성이 제기된다. 다만 이 부분은 학자들 간의 이견이 존재한다. 한편, 발목 부분만 흰색인 말을 뜻하는 ‘간자(Ganja)’는 몽골어 ‘칼잔(Qaljan: 이마에 흰 점이 있는 말)’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의미상의 이동(이마 → 발목)이 일어났거나, 혹은 몽골어의 다른 어휘인 ‘칸자(Ganja: 말의 발목에 채우는 족쇄)’와의 혼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외에도 얼룩말을 뜻하는 ‘부루(Buru)’는 몽골어 ‘부우룰(Buurul: 회색/흰 털이 섞인)’에서, 검은 털과 흰 털이 섞인 잿빛 말을 뜻하는 ‘총마(Chongma)’는 ‘초오호르(Cooqor: 점박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제주어의 말 모색 명칭은 단순한 색깔 묘사가 아니라, 말의 유전적 형질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한 고도의 전문 용어였으며, 이는 몽골의 선진 목축 기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언어적 도구였다. 제주 사람들은 이 낯선 외래어들을 자신의 혀에 맞게 굴리고 다듬어, 가장 제주다운 언어로 재탄생시켰다.

 

이러한 음운 대응과 의미 변천은 결코 단순한 언어 차용이 아니며, 제주어 사용자들이 외래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보이는 능동적 언어 전략의 한 사례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가라말’이나 ‘구라말’은 단순한 번역어가 아닌, 제주의 목축 환경과 감각에 맞춰 ‘분화적 개념화(Differentiated Lexicalization)’가 일어난 것이다. 몽골어에서 단일 개념이었던 단어가 제주어에선 말의 발굽 색, 갈기 색, 입술 색 등 더 미시적인 수준으로 구별되며 의미의 다차원적 확장을 겪는다. 또한, 음운적으로도 제주어 고유의 유음 처리 방식이나 파열음의 약화 경향에 따라 몽골어 /q/가 제주어 /k/ 또는 /g/로 흡수되면서 음성적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변형되었다. 이런 경향은 외래어의 토착화 과정에서 매우 전형적인 패턴이며, 언어 보존의 관점에서 제주어가 얼마나 유연하고 수용적인 시스템을 갖추었는지를 입증하는 지표다. 이처럼 제주의 말 관련 어휘는 단순한 기술어를 넘어서, 언어적 ‘살아남기’의 문화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3. 생활 전반으로의 확장: 의식주와 지명에 스며든 몽골의 숨결

 

몽골어의 흔적은 비단 말(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생활 방식 자체를 공유하기에 충분한 세월이었다. 의식주 전반, 그리고 제주의 자연을 부르는 지명에도 몽골어는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이는 언어 접촉이 특수 전문 분야(목축)에서 시작되어 일반 어휘(General Vocabulary)로 확산되는 전형적인 단계를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주의 산을 부르는 이름, ‘오름(Oreum)’이다. 물론 ‘오름’이 순수 한국어 동사 ‘오르다’에서 파생되었다는 견해도 강력하다. 하지만 몽골어에서 산이나 언덕을 뜻하는 ‘오로(Oro)’ 혹은 ‘올(Oul)’과의 음운적 유사성, 그리고 몽골 지배기 이후 ‘오름’이라는 명칭이 문헌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노꼬메 오름’, ‘아부 오름’, ‘다랑쉬 오름’ 등 개별 오름의 이름들은 몽골어 어원설에 힘을 실어준다. ‘노꼬메’는 몽골어 ‘노호이(Noqoi: 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개가 누워있는 형상), ‘아부’는 ‘아브(Ab: 아버지/존경)’와 연결되기도 한다.

 

제주 다랑쉬 오름



의생활과 도구에서도 흥미로운 단어들이 발견된다. 제주 여성들이 물을 길어 나를 때 쓰던 등짐 도구인 ‘물구덕’의 ‘구덕’은 바구니를 뜻하는데, 이는 몽골어 ‘쿠둑(Quduk)’과의 연관성은 적으나(쿠둑은 우물이라는 뜻), 가죽으로 만든 신발이나 물건을 뜻하는 단어들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제주어에서 벙거지 모자를 뜻하는 ‘벙거지’ 혹은 ‘립(笠)’과 관련된 용어들, 그리고 가축의 가죽을 다루는 기술과 관련된 어휘들에서 몽골어의 잔재가 보인다. 또한, 몽골의 소주인 ‘아라키(Araki)’가 제주에 전래되어 ‘고소리술’의 기원이 되었다는 점은 유명하다. ‘고소리’는 소주를 내리는 토기 증류기를 뜻하는데, 이 증류 방식 자체가 몽골군에 의해 전파된 것이다.

더욱 직접적인 증거는 ‘조랑말’이라는 단어 자체에 있다. ‘조랑’은 몽골어 ‘조로(Joroo)’에서 유래했다. ‘조로’는 말의 보법(Gait) 중 하나로, 좌우 다리를 동시에 움직여 흔들림을 최소화하고 속도를 내는 주법(측대보)을 훈련받은 말을 뜻한다. 즉, 원래는 품종 명칭이 아니라 ‘훈련받은 승용마’를 뜻하는 단어였으나, 한국에 들어와서 체구가 작고 날쌘 제주의 토종마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의미가 변화(Semantic Shift)한 것이다. 또한 말을 모는 목동을 뜻하는 ‘테우리’ 역시 몽골어의 흔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비록 어원이 명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몽골어의 직업 접미사나 관련 동사와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몽골어는 제주의 산천초목과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 목호들이 가져온 것은 채찍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식, 술, 옷, 그리고 언어를 가져왔고, 제주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몽골어 차용어는 단순한 외래어가 아니라, 제주의 풍토에 맞게 개량되고 진화한 ‘생존의 언어’였다. ‘가라말’을 타고 ‘오름’을 오르며 ‘고소리술’을 빚던 제주 사람들에게 몽골어는 더 이상 남의 나라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 차용어들은 단순히 기능어에 머물지 않고 제주의 정체성과 일상적인 감성 표현까지 아우르는 언어 자원으로 확장되었다. 예컨대, 제주 방언에서 ‘버르장머리 없다’는 표현의 ‘버르장’은 몽골어 ‘바르장(Baraqan)’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으며, 이는 예의·태도를 의미하는 단어다. 또한, 말의 성격이나 기질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어휘들 중 일부는 몽골어 ‘툰드(Tund, 거칠다)’와 같은 형용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생활 어휘 전반으로 퍼진 몽골어의 흔적은 단순한 외래 문화의 유입을 넘어서, 정서적 표현과 인간관계, 사회적 위계까지 언어 속에 새겨진 복합적 이식을 보여준다. 특히 제주 여성이 중심이 되는 농업과 어업의 노동 현장에서 사용되던 단어들, 예를 들어 물질도구나 수확물을 분류하는 명칭 일부에도 몽골어 기원이 의심되는 어휘가 산발적으로 존재한다는 최근 연구는, 몽골어 차용어가 남성 중심의 목축 분야를 넘어 여성의 언어 공간에도 일정 부분 스며들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언어는 소리의 흐름이자 삶의 궤적이다. 몽골의 언어가 제주 생활 전반에 걸쳐 잔잔히 퍼진 현상은, 그들이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갔음을 보여주는 언어적 증거다.

 

 

 


4. 결론 및 사회언어학적 고찰: 지배의 언어에서 공존의 언어로

언어는 권력의 지형도를 반영한다. 13세기 제주에 울려 퍼진 몽골어는 분명 정복자의 언어였다. 탐라총관부라는 식민 통치 기구 아래서 몽골어는 행정어이자 권력어로서 위세를 떨쳤을 것이다. 그러나 700년이 지난 지금, 제주어 속에 남은 몽골어 차용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그것은 식민 지배의 상처(Scar)이자, 동시에 문화적 융합(Fusion)의 증거다. 사회언어학적 관점에서 제주어 속 몽골어는 ‘하층 언어의 저항과 상층 언어의 토착화’라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보통 식민 지배가 끝나면 지배자의 언어는 급격히 소멸하거나 청산의 대상이 된다. 한국 사회가 일제강점기 잔재 용어를 순화하려 노력하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제주어 속 몽골어, 특히 목축 용어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기능적 필요성(Functional Necessity)’ 때문이다. 몽골이 물러간 후에도 제주는 여전히 조선의 말 공급 기지였고, 말의 모색을 구별하고 관리하는 기술은 필수적이었다. 이를 대체할 적당한 한국어 어휘가 부재했거나, 몽골어 어휘가 가진 디테일을 따라갈 수 없었기에 제주 사람들은 이 ‘오랑캐의 말’을 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언어 자산으로 흡수했다. 이는 언어 순혈주의보다 실용주의가 앞선 결과이며, 삶의 현장에서 언어는 이념보다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는 ‘피진(Pidgin)’과 ‘크레올(Creole)’ 형성의 초기 단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몽골인 목호와 제주 원주민 사이의 소통을 위해 생겨난 혼종어들이 세대를 거치며 문법적으로 정착되고 어휘화된 과정은, 제주어가 얼마나 유연하고 포용적인 언어 시스템을 가졌는지 증명한다. 목호들은 결국 제주 사람들과 섞여 ‘제주인’이 되었고, 그들의 언어 또한 ‘제주어’가 되었다. 이제 ‘가라말’이나 ‘조랑말’을 들으며 원나라의 수탈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그저 제주의 말, 제주의 단어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제주어 속 몽골어 차용어는 외세의 침략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언어라는 용광로 속에서 어떻게 용해되어 새로운 문화적 지층을 형성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화석이다. 이 단어들은 제주의 말이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역사의 산증인임을 웅변한다.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연구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그 속에 몽골 초원의 바람과 탐라의 바닷바람이 만나 일으킨 100년의 소용돌이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소멸은 곧 역사의 망각이다. 우리가 ‘가라’와 ‘구라’의 어원을 기억할 때, 비로소 제주의 역사는 평면적인 기록을 넘어 입체적인 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