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훈민정음의 ‘천(天)’, 500년의 시간을 건너 제주에 불시착하다
한국어의 역사에서 15세기는 언어 혁명의 시기였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담은 철학적 기호였다. 그중에서도 모음의 기본 자인 ‘ㆍ(아래아)’, ‘ㅡ(으)’, ‘ㅣ(이)’는 각각 하늘(天), 땅(地), 사람(人)을 상징하는 삼재(三才) 사상의 결정체였다. 하늘의 둥근 모습을 본뜬 ‘ㆍ’는 모든 소리의 근원이자 양(陽)의 기운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모음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 ‘하늘’은 육지에서 자취를 감췄다. 16세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급격한 음운 변화, 이른바 ‘아래아의 소실’ 현상으로 인해 표준어에서 이 소리는 ‘ㅏ’ 혹은 ‘ㅡ’로 흡수되며 문자로서의 기능과 소리로서의 생명을 모두 잃어버렸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은 예외가 존재한다. 한반도 남단의 섬, 제주도다. 지리적 고립과 독자적인 탐라국의 역사를 지닌 제주는 중세 국어의 원형을 화석처럼 보존하고 있는 언어의 타임캡슐이다. 현대 국어 화자들이 고문헌 속에서나 발견하는 ‘ㆍ’가 제주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일상의 언어다. 제주의 할머니들은 아직도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그 ‘하늘 소리’를 입술에 담아내고 있다. "혼저옵서예(어서 오세요)"의 ‘혼’이나, "멩심햡서(명심하세요)"의 ‘햡’ 속에 박힌 그 점 하나는 단순한 사투리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500년 전 한양의 사대부들이 쓰던, 그리고 세종이 백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한국어의 가장 오래된 DNA다.
그러나 지금 이 소중한 유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유네스코가 제주어를 ‘소멸 위기의 언어’로 지정한 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실제로 ‘아래아’를 정확히 구사할 수 있는 화자는 70대 이상의 고령층에 국한되어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 이 소리는 그저 ‘특이한 기호’일 뿐, 음성적으로 실현되지 않는 죽은 문자에 불과하다. 본고는 제주 방언 속에 남아 있는 ‘아래아’의 음성학적 실체를 규명하고, 이것이 현대의 문자 입력 체계 및 표기법과 충돌하며 겪는 딜레마를 분석하고자 한다. 나아가 소리(Sound)와 문자(Script) 사이의 괴리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언어적 가치가 무엇인지 성찰해 보고자 한다.
2. 역사음운론적 고찰: ‘대모음 추이(Great Vowel Shift)’와 제주의 언어적 고립성
언어는 생물처럼 진화한다. 중세 국어에서 근대 국어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은 단연 ‘아래아의 소실’이다. 국어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15세기 중세 국어의 모음 체계는 매우 안정적인 7모음 체계(ㅣ, ㅡ, ㅓ, ㅏ, ㅜ, ㅗ, ㆍ)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구조 안에서 ‘아래아’는 후설 저모음(Back Low Vowel) 혹은 후설 중모음의 위치를 점유하며, 음운론적으로 모음조화의 핵심 축을 담당했다. 양성모음인 ‘ㆍ, ㅗ, ㅏ’와 음성모음인 ‘ㅡ, ㅜ, ㅓ’가 철저하게 대립하며 문법적 규칙성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한국어는 격동의 시기를 맞이한다. 사회의 혼란은 언어의 급변을 초래했고, 모음 체계 전체가 흔들리는 ‘국어의 대모음 추이’가 발생했다. 1단계 소실은 16세기에 비어두(非語頭) 위치의 ‘ㆍ’가 ‘ㅡ’로 변하면서 시작되었다(예: ᄆᆞᄋᆞᆷ -> 마음). 이어 18세기에는 어두(語頭) 위치의 ‘ㆍ’마저 ‘ㅏ’로 바뀌며(예: ᄒᆞᆫ -> 한), 사실상 육지에서의 아래아는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아래아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것은, 이미 민중들의 언어 습관 속에서 그 소리가 사라졌음을 확인 사살한 행정적 절차에 불과했다.
반면, 제주는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서 한 발자국 비켜나 있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은 육지의 언어 변화가 유입되는 속도를 현저히 늦췄다. 또한 제주의 척박한 화산토 환경과 잦은 외세의 침탈, 그리고 조선시대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과 같은 정치적 억압은 역설적으로 제주 내부의 공동체 결속력을 강화했고, 이는 언어적 보수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했다. 그 결과, 육지에서는 수백 년 전에 사라진 1단계 변천 이전의 형태, 즉 어두와 비어두를 가리지 않고 ‘ㆍ’가 유지되는 현상이 제주어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옛것이 남았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제주어에 남아 있는 아래아는 중세 국어의 모음조화 규칙이 현대에까지 적용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육지 표준어에서는 ‘깡충깡충(양성)’과 ‘껑충껑충(음성)’의 대립이 파괴되어 ‘깡총깡총’이 비표준어가 되는 혼란을 겪었지만, 제주어에서는 여전히 ‘ㆍ’를 중심으로 한 양성모음 계열의 어휘들이 견고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제주 방언의 아래아 연구는 단순히 방언학의 영역이 아니라, 한국어의 잃어버린 연결 고리를 복원하는 국어사(國語史)적 과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주 방언의 아래아 연구는 단순히 방언학의 영역이 아니라, 한국어의 잃어버린 연결 고리를 복원하는 국어사(國語史)적 과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제주어의 음운 체계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능동적 변이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김수경(2021)의 연구에 따르면, 일부 중장년층 화자들 사이에서 ‘ㆍ’의 발음이 세대 간에 음질의 차이를 보이며, 표준어 ‘ㅡ’ 또는 ‘ㅓ’에 가까운 변이음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¹. 이는 단순한 보존을 넘어서 제주어 내부에서도 변화의 흐름이 존재하며,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가장 정밀한 음운사적 기록이 필요한 시점임을 시사한다. 고립은 보존이지만, 동시에 고립된 변화이기도 하다. 제주라는 언어의 섬은 아직 살아 있는 중세 국어의 실험실인 셈이다.
¹ 김수경(2021). 「제주 방언 내 아래아 실현 양상의 세대 간 차이 연구」. 『국어음운연구』 제68호.
3. 음성학적 미시 분석: [ɒ]와 [ɔ] 사이, 그 오묘한 소리의 좌표
그렇다면 과연 제주 할머니들이 발음하는 ‘아래아’의 실제 소릿값은 무엇인가? 많은 대중 매체나 일반인들은 이를 단순히 ‘오(ㅗ)’와 ‘아(ㅏ)’의 중간 소리 정도로 이해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학술적으로는 훨씬 더 정교한 설명이 필요하다. 현대 음성학의 포먼트(Formant) 분석 기법을 통해 제주 노년층 화자의 발음을 분석해 보면, 아래아의 실체는 국제음성기호(IPA)로 [ɒ] (원순 후설 저모음)와 [ʌ] (비원순 후설 중저모음), 혹은 [ɔ] (원순 후설 중저모음)의 영역에 걸쳐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표준어의 ‘ㅏ[a]’는 혀가 입 안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입을 크게 벌리는 저모음이다. 반면 ‘ㅗ[o]’는 혀가 뒤쪽 높게 위치하며 입술을 둥글게 모으는 원순 고모음이다. 제주의 ‘ㆍ’는 이 두 지점 사이, 정확히는 혀의 위치가 뒤쪽(Back)이면서 높이는 중간보다 약간 낮은(Low-mid) 지점에서 형성된다. 중요한 특징은 입술의 모양(Roundness)이다. 15세기 중세 국어의 아래아는 입술을 둥글게 하지 않는 비원순 모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대 제주어에서의 실현 양상은 화자에 따라 원순성이 약하게 개입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인접 모음인 ‘ㅗ’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미묘한 소리의 차이는 단순한 뉘앙스가 아니라 의미를 변별하는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제주어에서 ‘말(言/語)’은 [mal]로 발음되지만, 타는 동물인 ‘말(馬)’은 ‘ᄆᆞᆯ’ [mɒl]로 발음된다. 표준어에서는 문맥으로 파악해야 하는 동음이의어지만, 제주어 화자들에게는 소리의 높낮이와 입 벌림의 정도가 명확히 다른 별개의 단어다. 또한 ‘발(足)’과 ‘ᄇᆞᆯ(팔, Arm)’, ‘살(Flesh)’과 ‘ᄉᆞᆯ(나이, Age)’ 역시 아래아의 유무로 뜻이 완전히 갈라지는 최소대립쌍(Minimal Pair)을 이룬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음성학적 구분이 70대 이하 세대로 내려오면서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 세대의 제주 도민들은 학교 교육과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표준어 모음 체계에 동화되었다. 그들은 표기로는 ‘ᄆᆞᆯ’이라고 적혀 있어도, 실제 발음은 [mal] 혹은 [mol]로 읽는다. 즉, 머리로는 이것이 ‘아래아’라는 것을 인지하지만, 구강 구조와 혀의 근육은 그 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언어학에서 말하는 ‘음운의 합류(Merger)’ 현상으로, 한 번 합쳐진 소리는 인위적인 노력 없이는 다시 분화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듣는 할머니들의 ‘아래아’ 소리가, 지구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라이브 연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듣는 할머니들의 ‘아래아’ 소리가, 지구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라이브 연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더불어, 이 발음은 단순한 음성 정보로서의 의미를 넘어, 정체성과 정서가 얽힌 정서음(Emotive Phoneme)의 기능도 수행한다. 윤재민(2016)은 제주어 화자들이 아래아가 들어간 단어를 말할 때, 해당 어휘에 대해 더 높은 감정적 애착과 문화적 친밀감을 표현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². 다시 말해, 아래아는 단지 음성학적 유물이나 교과서 속 기호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 속에 살아 있는 '소리의 정체성'이다. 표준어의 효율성 너머에 존재하는, 언어의 인간적인 면모가 바로 여기에 있다.
² 윤재민(2016). 「제주어 음운이 정서적 인식에 미치는 영향 연구」. 『언어문화연구』 제38권.
4. 표기와 기술의 딜레마: 디지털 시대의 ‘아래아’, 유니코드의 망명자
음성적 소멸보다 더 복잡한 문제는 ‘표기’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15세기의 문자를 기록하고 전송해야 하는 기술적 난제 때문이다.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어 표기법>을 고시하며 아래아(ㆍ)를 공식적인 문자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 소리는 사라져가더라도 기록으로서의 언어는 지켜야 한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현실적인 ‘입력’과 ‘호환’의 벽에 부딪혔다.
우선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표준 입력기(키보드)에는 ‘아래아’ 키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아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제주어 입력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ㅎ+한자키+특수기호’를 찾아 헤매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폰트(Font)다. 대부분의 웹 폰트와 모바일 서체는 현대 한글 2,350자(완성형) 혹은 11,172자(조합형)를 지원하지만, 여기에 ‘아래아’가 포함된 고어(Old Hangul) 영역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웹사이트나 문서에서 제주어를 표기하면 ‘ᄆᆞᆯ’이 글자가 깨져 보이거나(Toffee box 현상),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어 ‘ㅁㆍㄹ’처럼 보이는 가독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기술적 불편함은 표기의 혼란을 부추긴다. 도로명 주소나 상호 간판, 관광지 안내판 등을 보면 ‘아래아’를 표기할 수 없어 비슷한 모양인 ‘ㅗ’나 ‘ㅏ’로 대치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참(True/Real)’을 뜻하는 접두사 ‘ᄎᆞᆷ’을 ‘촘’으로 표기하여 ‘촘말로(정말로)’라고 쓰거나, 아예 표준어식으로 ‘참말로’라고 쓰는 식이다. 이는 언어의 왜곡을 낳는다. ‘촘’이라고 적힌 글자를 보는 관광객과 젊은 세대는 그것을 [chom]으로 읽게 되고, 결국 표기가 발음을 왜곡시켜 소멸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일각에서는 대중성을 위해 아래아 표기를 포기하고 현대 맞춤법(ㅏ, ㅡ, ㅗ)으로 풀어서 적자는 주장도 제기한다. 가독성을 높여야 제주어의 저변이 확대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학계와 보존론자들은 이에 강력히 반대한다. 표기를 바꾸는 순간, 그 단어가 품고 있던 어원 의식과 중세 국어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ᄒᆞᆫ저’를 ‘혼저’로 적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중세어 ‘ᄒᆞᆫ(One/Big)’과의 연관성을 잃고 정체불명의 사투리로 전락한다. 디지털 유목민 시대, 제주어는 유니코드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서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망명자와도 같다. 기술이 인간의 언어를 담아내지 못하는 이 아이러니는, 효율성 중심의 현대 문명이 잃어버리고 있는 다양성의 가치를 뼈아프게 시사한다.
기술이 인간의 언어를 담아내지 못하는 이 아이러니는, 효율성 중심의 현대 문명이 잃어버리고 있는 다양성의 가치를 뼈아프게 시사한다.
이와 관련해 한글의 디지털 표기 문제를 다룬 이정호(2020)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³. 그는 유니코드(Unicode) 체계 내에서도 아래아가 포함된 한글 조합형 영역(U+3180~U+318F 및 U+11xx)조차 대부분의 웹 플랫폼에서 비표준 문자로 인식되어 글꼴 출력이 제한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즉, 기술적 표준화가 오히려 문화적 소수 언어를 배제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어 보존을 위해서는 단순한 문자 사용의 자유를 넘어서, 디지털 생태계 전반에서의 하위문화 포용성이라는 거대한 의제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제주어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주도만의 노력이 아니라, 한국 IT 환경 전반의 인식 전환이다.
³ 이정호(2020). 「유니코드 체계와 한글 소수 문자 처리의 한계」. 『디지털문화연구』 제14권.
5. 결론: 사라지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세계관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이 명제에 비추어 볼 때, 제주 방언의 ‘아래아’가 소멸한다는 것은 단순히 모음 하나가 사라지는 음성학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제주 사람들이 수백 년간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던 고유한 ‘존재의 방식’과 ‘세계관’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아(ㆍ)는 훈민정음 창제 원리인 천지인(天地人) 중 ‘하늘’을 상징한다. 척박한 섬에서 거친 바람을 맞으며 살아야 했던 제주 사람들에게,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도 깊은 소리를 내는 이 모음은 자연과 조응하며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언어이자, 하늘을 경외했던 정신의 흔적이었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효율성과 표준화라는 명목 아래 이 불편한 ‘점’을 박물관의 박제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디지털 기술의 포용성을 넓히고 교육을 통해 이 살아있는 화석을 미래로 가져갈 것인가. 다행히 최근 들어 제주어 폰트 개발, AI 음성 합성을 통한 제주어 복원, 힙합과 문학 등 예술 장르에서의 차용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아래아 르네상스’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는 긍정적인 신호다.
언어의 생명력은 문법책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애정과 기억 속에 있다. 비록 지금의 젊은 세대가 할머니들처럼 완벽한 [ɒ] 발음을 구사하지 못할지라도, 표기된 ‘ㆍ’를 보며 제주의 정체성을 떠올리고, 그 속에 담긴 역사의 무게를 가늠해 볼 수 있다면 아래아는 죽은 것이 아니다. ‘아래아’는 한국어의 과거이자,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할 미래의 상징이다. 이 작은 점 하나를 지키는 일은, 획일화되어 가는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고유의 무늬를 지키는 가장 숭고한 문화적 투쟁이 될 것이다.
제주를 여행하며 길가에 핀 간판 속의 ‘ㆍ’를 마주친다면, 잠시 멈춰 서서 그 소리를 상상해 보라. 500년 전의 하늘이, 세종의 마음이, 그리고 제주의 바람이 그 점 하나에 응축되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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