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은 어떻게 새로운 계급을 만드는가
디지털 자산은 진입 장벽이자 권력의 시작점이다
디지털 자산이 단순한 수집품이나 투자 대상이 아니라, 디지털 사회에서의 ‘신분’과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동산, 명품, 주식 등 현실 자산의 규모가 사회적 계층을 구분짓는 기준이었다면, 오늘날 디지털 공간에서는 NFT 소유 여부, 토큰 보유량, 메타버스 부동산 보유 등이 계급의 새로운 척도가 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디지털 참여에 대한 접근성’이다. Web3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커뮤니티나 프로젝트는 NFT를 보유한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NFT는 마치 디지털 사회의 입장권처럼 기능하며, 이를 소유한 사람은 소속, 정보, 기회에 대한 우선 접근권을 가진다. 즉, 자산을 보유한 사람만이 네트워크 내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자산의 유무가 참여 권한과 영향력의 전제 조건이 되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들어올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번 들어간 이후에도 그 사람의 NFT 종류, 보유 수량, 초기 참여 시점 등이 디지털 커뮤니티 내 위계 질서를 만들어낸다. 이는 디지털 자산이 소유자의 정체성과 발언권을 결정짓는 디지털 신분증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뜻하며, 단지 데이터에 불과했던 자산이 사회적 위치를 결정하는 구조적 도구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 구조는 사용자에게 ‘디지털 세계에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구축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정체성이 특정 자산의 보유 여부에 의해 쉽게 규정되도록 만든다. NFT 컬렉션 하나만 보더라도, 특정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뢰나 명예로 연결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디지털 자산은 단순한 투자 수단을 넘어, 자신을 정의하고 표현하는 사회적 수단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자산의 존재 유무는 정보 접근 권한뿐 아니라, 사회적 발언력의 크기를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이로 인해 디지털 자산은 점차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간극을 확대시키며, 구조적인 권력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희소성과 소속은 새로운 위계 구조를 강화한다
디지털 자산은 무한히 복제될 수 있는 이미지와 달리, 블록체인 기술에 의해 희소성이 보장된다. 이 희소성은 단순히 ‘구하기 어렵다’는 의미를 넘어 해당 자산을 소유한 사람의 ‘레벨’을 상징하는 강력한 기준이 된다. NFT 프로젝트의 경우, 초기 민팅에 참여한 사람과 이후 2차 거래로 구매한 사람 사이에도 명확한 위계 차이가 존재하며, 커뮤니티 내에서도 이 위계를 그대로 계급화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NFT 커뮤니티에서는 ‘오리지널 홀더(Original Holder)’ 또는 ‘OG(Original Gangster)’라는 이름으로 초기 소유자에게 별도의 칭호, 배지, 혜택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체계는 마치 중세의 귀족 계급처럼 기득권에 따른 계급을 구조화한다. NFT 하나에도 메타데이터의 특성, 이미지의 희귀도, 콜렉션 내 순번 등이 부여되면서 소유자의 위상을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만든다.
다음의 예를 보자. 같은 NFT 컬렉션 안에서도 ‘1/1 유일작’을 보유한 사람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예술 후원자로서 특별 대우를 받는다. 또한 DAO 거버넌스 투표에서는 NFT의 수량과 보유 기간에 따라 투표권이 차등 분배되며, 이는 곧 정치적 발언권의 차등화를 불러온다. 결국 희소성과 보유 이력은 디지털 자산 소유자 사이의 계층적 위계를 고착시키고 있으며, 이는 물리적 자산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즉각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게다가 희소성은 단순히 외부 평가로 끝나지 않는다. 내부 커뮤니티의 룰 자체를 형성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특정 희귀 NFT 소유자만이 읽을 수 있는 문서나 채널이 존재하며,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실질적인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희귀성을 보유한 자산은 커뮤니티 내에서 정보의 비대칭까지 만들어낸다. 희귀한 NFT는 정보와 기회의 관문이 되고, 이 관문은 다시 자산 가치를 높이는 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희소성과 소속은 디지털 사회 내에서 단순한 ‘상징’이 아닌 실제적인 ‘지배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커뮤니티 참여는 권리이자 특권이 된다
디지털 자산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단순한 소유의 의미를 넘어서, 커뮤니티 내 권리 행사와 리더십 참여의 자격을 의미한다. DAO(탈중앙화 자율조직)에서는 자산을 소유한 사람만이 프로젝트 방향을 제안하거나 투표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 영향력은 소유 자산의 규모에 비례해 커진다. 이것은 경제적 자본이 곧 정치적 권력이 되는 구조이며, 현실 사회의 자본주의 계급 구조와 매우 유사한 형태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커뮤니티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이것은 디지털 공간 내에서 누가 리더이고, 누가 추종자인지를 결정짓는 메커니즘이다. 투표권이 있다는 것은 커뮤니티의 정책 방향, 수익 분배, 협업 대상 결정 등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고, 이는 곧 커뮤니티 내 권력의 핵심에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특정 NFT 프로젝트에서 10개 이상의 NFT를 보유한 사람에게는 운영 회의에 직접 참여하거나 새로운 파트너십을 제안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반면 NFT를 단 한 개만 보유한 사람은 소식 수신만 가능한 ‘청중’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이러한 계급화는 디지털 공간 내에서 소유가 곧 발언의 권리로 변환되는 사회를 보여준다.
또한 커뮤니티 안에서는 '누가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투자했는가'에 따라 관계적 영향력까지도 형성된다. 이로 인해 디지털 자산은 경제적 수단이자 사회적 통로, 정치적 자격 조건으로 작용하며, 디지털 사회 전반에 계급화를 촉진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더 나아가, NFT 프로젝트나 DAO 내에서는 ‘기여도’라는 개념도 자산과 연결되어 기능한다. 실제로 많은 프로젝트는 단순한 자산 보유를 넘어, 소유자의 활동 내역까지 분석하여 기여 등급을 분류한다. 기여 등급이 높을수록 더 많은 권한과 보상이 주어지는데, 문제는 이 기여 자체도 결국 ‘얼마나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느냐’가 전제조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커뮤니티 참여는 민주적 과정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자산을 기반으로 한 제한적 참여 구조로 변질된다. DAO에서 다수결이 아닌 '지분 기반 투표'가 일반화되면서, 적은 수의 대규모 자산 보유자가 다수의 일반 참가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흔해졌다. 이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적 통제 메커니즘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DAO 운영을 분석한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커뮤니티의 1% 미만이 전체 거버넌스 결정의 90% 이상을 주도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커뮤니티는 본래의 이상적 형태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자산 중심의 권력 집중이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참여’라는 말은 이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회가 아닌, 자산 소유라는 조건을 충족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으로 변화했다. 디지털 자산은 커뮤니티에서의 목소리 크기뿐 아니라,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엘리트’를 탄생시키는 구조적 기반이 되고 있다.
디지털 자산은 관계 구조마저 계층화한다
디지털 자산은 단순히 개인의 권한을 결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자산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관계망과 네트워크 구조 역시 자산 소유 여부에 따라 위계화된다. 즉, 어떤 디지털 자산을 보유했는지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인맥, 공동 프로젝트, 심지어 온라인에서의 신뢰도까지 달라진다. 이는 현실 사회에서 고급 클럽 멤버십이나 명문대 동문 네트워크가 사회적 자산으로 작동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NFT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보면 이 구조는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정 NFT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입장 가능한 채팅방, 포럼, 오프라인 행사들이 수없이 많아졌고, 이곳에서 형성된 관계는 이후 비즈니스, 크리에이티브 협업, 공동 투자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즉, 디지털 자산이 새로운 관계 자본(social capital)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커뮤니티를 넘어 지속적 이익과 기회를 생성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 구조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단순히 SNS를 통해 노출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팔로우, 댓글, 대화 참여 수준까지 달라지는 현실은 디지털 자산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본 단위로 이미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디지털 자산은 개인의 권리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위계 구조까지 계층화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게다가 이 구조는 인간 관계의 본질마저 바꾸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같은 관심사, 같은 경험, 혹은 비슷한 가치관을 중심으로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지금은 디지털 자산이라는 ‘공통된 경제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인간관계가 정렬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소셜 네트워킹을 넘어서, 자산 보유자 간의 폐쇄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게 만들고 있다. 이 안에서의 대화, 협업, 신뢰는 모두 ‘보유 자격’을 통과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형성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처럼 계층화된 관계망이 디지털 자산의 가치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소위 '인플루언서 지갑'에 담긴 NFT는 단순한 디지털 파일이 아니라, 특정 인맥과의 연결 가능성을 상징하는 자산이 된다. 그 NFT를 보유한 사람은 단순히 이미지 하나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와 연결된 사회적 구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접근권'을 함께 보유하게 된다. 이처럼 자산은 곧 인적 네트워크의 열쇠로 작용하며, 사회적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또한, 프로젝트 간의 연계 구조도 이 계층화를 더욱 강화한다. 예를 들어 어떤 DAO 커뮤니티에서 인정받은 사용자가 다른 DAO에서도 우선적으로 초대받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으며, 이는 관계망의 독립성이 아니라 상호 강화되는 폐쇄성을 만들어낸다. 디지털 자산을 중심으로 한 인간 관계는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새로운 ‘인맥 상류층’이 형성되고 있다.
결국 디지털 자산은 단순히 가상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를 결정짓는 관계적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관계가 더 이상 감정이나 공감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보유 자산과 디지털 입장권에 따라 결정되는 세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 새로운 구조는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특정 집단의 권력 집중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디지털 계급은 현실보다 더 빠르게 고착된다
현실 사회에서의 계급은 여러 제도적 장치에 의해 완전히 고착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교육, 노동, 사회적 이동성이라는 기제를 통해 일정한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 기반의 계급은 더 빠르게, 더 확실하게 계층을 고착화시킨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디지털 자산은 처음부터 투명하게 거래되고, 기록되고, 비교 가능하기 때문이다.
NFT의 민팅 타이밍, 거래가, 지갑 주소, 플랫폼 내 활동 내역은 블록체인 상에 모두 남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이러한 투명성은 오히려 상대적 우위를 더 명확하게 보여주고, 따라잡기 어려운 ‘초기 진입자 특권’을 고착시킨다. 더불어 이 구조는 ‘더 가진 자가 더 많은 기회를 얻는’ 디지털 파레토 구조를 만들어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계급 구조가 플랫폼 간 연동을 통해 확장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플랫폼에서 유명세를 얻은 NFT 보유자는 다른 플랫폼에서도 자동으로 우대 대상이 된다. 디지털 자산 하나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다차원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디지털 사회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신분을 고정시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디지털 자산 기반의 계급화는 기술이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처리하는 만큼, 신분 구조 또한 더 빠르고 철저하게 사람들을 구분 짓는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기회’가 아닌 ‘소유 여부’로만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게 만드는 디지털 불평등의 시대를 예고한다.
더 나아가, 이 디지털 계급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굳어진다. 초기 보유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하게 되고, 이는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의 초기 민팅 참여, 프라이빗 세일 초대, DAO 의사결정 참여 등으로 이어진다. 반면 후발 진입자들은 이미 형성된 구조 속에서 높은 장벽을 마주하게 되며, 동일한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특히 ‘온체인 평판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이 고착화 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용자의 지갑 내 활동 이력, 참여 프로젝트, 커뮤니티 투표 참여 횟수 등은 데이터로 기록되어, 이후 신규 프로젝트에서 ‘신뢰 기반 화이트리스트’로 활용된다. 이 시스템은 겉으로는 투명성과 신뢰를 위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자산 보유 이력을 기준으로 향후 기회를 결정하는 폐쇄적 구조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한 사용자가 과거 유명 NFT 프로젝트에서 OG로 활동했을 경우, 이후에 출시되는 고급 프로젝트의 화이트리스트에 자동 포함되는 일이 빈번하다. 반면 신규 유저는 아무리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이력 부족으로 초기 기회에서 배제된다. 이는 ‘자산 + 이력’이라는 이중 장벽을 만들고, 디지털 세계의 진입 장벽을 점점 더 높이고 있다.
결국 이 구조는 ‘지금 가진 자가 내일도 가질 수 있는’ 순환 고리를 만들어낸다. 이 고리는 계층 이동을 어렵게 만들고, 상위 1%의 정보와 기회 독점 구조를 공고히 한다. 기술의 진보가 평등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디지털 자산 사회는 오히려 더 빠르고 명확하게 신분을 나누고 있다. 정보가 공개되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무엇을 얼마나 오래 보유했는지에 따라 디지털 세계의 계급표는 이미 그려지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더 정교하게 강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