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방언의 조사 ‘~도라’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강원도 영월 방언 ‘~도라’, 중세 국어의 흔적이자 사라져가는 언어 유산
영월 지역의 고립된 지리적 특성이 빚어낸 방언 조사 ‘도라’의 어원, 문법, 정서적 기능을 분석하고, 소멸 위기 속 방언 보존의 필요성과 한국어 다양성의 가치를 조명한다.
영월의 지리적 특수성과 방언의 고립이 빚어낸 언어적 화석의 발견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어 내리다 잠시 숨을 고르는 곳, 강원도 영월은 지리적으로나 인문학적으로나 매우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험준한 산세에 둘러싸여 외부와의 왕래가 쉽지 않았던 탓에 영월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만의 고유한 생활 양식과 문화를 보존해 올 수 있었으며, 이는 언어 생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산악 지역은 평야 지대에 비해 언어의 변화 속도가 현저히 느리며, 중앙의 표준어가 침투하기 어려운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고대 국어의 흔적이나 독자적으로 진화한 방언형을 발견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특히 영월 방언은 행정구역상 강원도에 속하면서도 충청북도, 경상북도와 인접해 있어 세 지역의 방언적 특징이 혼재되거나 융합되는 전이 지대의 성격을 띠면서도, 동강과 서강이 굽이치는 지형적 폐쇄성으로 인해 영월만의 독특한 어휘와 문법소를 발달시켜 왔다. 그중에서도 화자가 과거에 직접 경험한 사실을 회상하거나 확인하듯 진술할 때 사용하는 종결 어미 혹은 조사적 성격을 띤 도라는 영월 토박이들의 화법을 규정짓는 매우 중요한 언어적 표지이다. 이는 표준어의 더라와 대응되는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와 음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본고에서는 소멸 위기에 처한 영월 방언의 도라가 단순한 사투리가 아니라 한국어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담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임을 규명하고, 그 어원적 뿌리와 문법적 기능을 심층적으로 탐구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시골 노인의 말끝에 붙은 이 작은 조사 하나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언어의 진화 과정과 척박한 산간 지방에서 삶을 영위해 온 사람들의 정서 구조가 압축되어 있다.
중세 국어의 회상 선어말 어미 ‘-더-’의 음운론적 변이와 융합 과정
영월 방언에서 빈번하게 관찰되는 도라의 어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15세기 중세 국어의 문법 체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대 표준어에서 과거 회상을 나타내는 더라는 분석적으로 선어말 어미 -더-와 종결 어미 -라가 결합한 형태이다. 중세 국어에서 -더-는 화자가 과거에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한 동작이나 상태를 객관적으로 서술할 때 사용하는 필수적인 문법소였다. 영월 방언의 도라 역시 이 -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표준어와 달리 더가 아닌 도라는 형태로 실현되는가에 대한 음운론적 해명이다. 이는 강원도 영월 지역을 포함한 영서 및 영동 지방 방언에서 흔히 나타나는 원순 모음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어사적으로 평순 모음인 ㅡ나 ㅓ가 양순음(입술소리) 뒤에서, 혹은 특정 음운 환경에서 원순 모음인 ㅜ나 ㅗ로 변하는 현상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영월 방언의 경우,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거나 발음의 편의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어말 어미의 모음이 후설 원순 모음화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즉 -더-의 ㅓ 모음이 발음할 때 입술을 둥글게 모으는 ㅗ 모음으로 교체되면서 도라는 형태가 정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이는 하더라를 하도라로, 먹더라를 먹도라로 발음할 때 느껴지는 청각적 인상, 즉 화자의 확신이나 감탄의 강도를 높이는 화용론적 기능과도 결부된다. 더 나아가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단순한 음운 변화가 아니라, 고대 국어에서 감탄이나 강조를 나타내는 보조사 도나 고어의 특정 종결형이 융합된 결과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회상법 선어말 어미 -더-가 영월이라는 폐쇄적 언어 공동체 내에서 독자적인 음운 변화 규칙, 특히 모음 조화의 파괴와 재형성 과정을 거치며 도라는 독특한 음성형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표준어가 획일적인 문법 규칙을 따르는 동안 방언은 구어적 상황에서의 전달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도라’의 통사적 기능과 증거성(Evidentiality)을 통한 화자의 태도 분석
문법적인 측면에서 영월 방언의 도라는 단순한 과거 시제의 서술을 넘어 증거성(Evidentiality)이라는 복합적인 문법 범주를 실현한다. 증거성이란 화자가 자신이 말하는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문법적으로 표시하는 체계를 말한다. 표준어의 더라 역시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들은 것을 전달하는 기능을 하지만, 영월 방언의 도라는 여기에 화자의 주관적인 감흥이나 청자의 동의를 구하는 뉘앙스가 훨씬 강하게 덧입혀져 있다. 예를 들어 영월의 장터에서 촌로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참 일을 잘하도라라는 문장은 단순히 그가 일을 잘했다는 사실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내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정말로 감탄할 만큼 일을 잘하더군.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통사적으로 도라는 형용사나 동사의 어간 뒤에 직접 붙어 문장을 종결짓는 역할을 하며, 때로는 의문형 어미와 결합하지 않고도 억양의 변화만으로 의문이나 확인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표현이 정보의 객관성보다는 화자와 청자 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확인하는 데 주로 쓰인다는 사실이다. 영월과 같은 좁은 지역 사회에서는 정보가 공유되는 속도가 빠르고 구성원 간의 경험이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화자는 도라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시키고, 청자로부터 맞장구를 유도하여 대화의 결속력을 다진다. 이는 문법 형태소가 사회적 관계를 조율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흥미로운 사례다. 또한 도라는 문장 끝에서 길게 연음되어 발음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운율적 특징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느끼는 화자의 그리움이나 아쉬움, 혹은 놀라움과 같은 심리적 태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기제로 작용한다. 결국 도라는 단순한 서술어가 아니라 화자의 기억 속에 각인된 감각적 경험을 청자에게 생생하게 전이시키는 정동(Affect)의 전달자인 셈이다.
방언 소멸의 가속화와 지역 정체성 보존을 위한 언어학적 아카이빙의 시급성
안타깝게도 영월 방언의 고유한 향취를 담고 있는 도라와 같은 표현들은 현재 심각한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산업화 이후 진행된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영월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으며, 남아 있는 화자들의 고령화는 방언 전승의 단절을 가속화하고 있다. 더욱이 학교 교육과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표준어가 절대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젊은 세대에게 도라는 촌스럽거나 교정해야 할 비표준적인 발음으로 인식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세상을 떠나면 그들의 입말에 묻어 있던 도라는 영원히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의 정신과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도라라는 말 속에는 영월의 험준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삶을 일구어 온 사람들의 땀방울과,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온 공동체의 역사가 스며 있다. 이 단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표준어로는 결코 번역할 수 없는 특유의 정서와 세계관이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영월 방언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 그리고 디지털 아카이빙 작업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단어 목록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실제 대화 맥락에서 도라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어떤 표정과 억양으로 발화되는지를 영상과 음성으로 기록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연구 결과물은 구글 애드센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공유됨으로써 한국어의 다양성을 알리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언어학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대중이 함께 방언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보존에 동참할 때, 우리는 획일화된 언어의 시대를 넘어 다채로운 말의 풍경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영월의 산골짜기에서 울려 퍼지던 도라라는 소리가 단순한 메아리로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의 기억과 기록 속에 단단히 붙들어 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