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지역 방언의 조사 께서와 가의 교체 현상 태백산맥 너머의 독자적 문법 체계와 존비법의 재해석
강릉 방언은 태백산맥이 지킨 독자성 속에서 ‘께서’ 대신 ‘가(이가)’를 널리 쓰며, 서술어 중심 존대법과 친밀성의 사회언어학을 드러낸다.
태백산맥이 지켜낸 언어의 섬 강릉 방언의 지리적 고립성과 문법적 독자성
한반도의 언어 지도를 펼쳐보면 강원도 영동 지방은 매우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에 속해 있지만, 언어학적으로는 서쪽의 영서 방언(경기 방언권)과 확연히 구분되며, 오히려 남쪽의 경상도 방언과 많은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독자적인 진화 과정을 거친 유성조 방언권에 속한다. 이러한 언어적 이질성을 만들어낸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한반도의 척추인 태백산맥이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산줄기는 수천 년 동안 영서와 영동의 교류를 제한하는 자연적 장벽으로 작용했고, 덕분에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 방언은 중앙어(서울말)의 급격한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중세 국어의 문법적 특징과 고유한 음운 체계를 화석처럼 보존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고 학술적 가치가 높은 현상은 바로 격조사, 특히 주격 조사 가와 존칭 주격 조사 께서의 교체 및 혼용 현상이다.
표준어 문법에서 주어를 높일 때 께서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적인 규칙이다. 할아버지가 오셨다가 아니라 할아버지께서 오셨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강릉 토박이들의 자연스러운 발화 속에서는 이 규칙이 빈번하게 무시되거나 재해석된다. 그들은 점잖은 어르신을 지칭할 때도 할아버지가 와따니 혹은 선생님이가 그랬잖소와 같이 께서를 써야 할 자리에 가나 이, 혹은 이가와 같은 일반 주격 조사를 과감하게 사용한다. 타 지역 사람들의 귀에는 이것이 존대법을 모르는 무례한 언어 습관이나 문법적 오류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언어학적 관점에서 이를 심층 분석해 보면, 이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강릉 방언만이 가진 고도의 문법적 효율성과 독특한 사회언어학적 존비법(Politeness) 체계가 작동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강릉 방언은 존경의 뜻을 조사(Particle)에 의존하기보다 서술어(Predicate)의 어미 활용을 통해 실현하는 서술어 중심의 경어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강릉 지역 방언에서 나타나는 조사 께서와 가의 교체 현상을 통사론적, 화용론적 관점에서 정밀하게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표준어의 잣대로 방언을 재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각 방언이 가진 고유의 문법적 논리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나아가 이 현상이 강릉이라는 지역 사회의 인간관계와 위계질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급격한 표준어 보급으로 인해 이러한 문법적 특징이 어떻게 소멸해가고 있는지를 추적함으로써, 사라져가는 언어 유산의 가치를 인문학적으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서술어 일치(Predicate Agreement)의 강화와 조사의 기능 축소
강릉 방언에서 께서 대신 가가 빈번하게 쓰이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어의 주체 높임법 실현 원리를 살펴보아야 한다. 표준어에서 주체 높임은 주격 조사 께서와 서술어의 선어말어미 -(으)시-가 호응하는 구조를 띤다. 즉, 문장의 머리(주어)와 꼬리(서술어) 양쪽에서 높임의 표지를 부착하여 이중으로 존대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를 문법용어로 일치(Agreement)라고 한다. 그러나 강릉 방언은 이러한 이중 표지의 비효율성을 거부하고, 의미 전달의 핵심인 서술어에 존대의 기능을 집중시키는 경제적인 문법 전략을 취한다.
강릉 방언 화자들의 뇌내 문법 체계에서 존경의 의미를 담당하는 핵심 형태소는 주격 조사가 아니라 서술어의 어미다. 따라서 주어에 께서를 붙이지 않고 일반 조자인 가를 붙이더라도, 서술어 부분에서 -우, -시-, -래요 등의 존대 어미를 확실하게 사용함으로써 문법적인 정합성을 완성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께서 진지를 드신다"라는 표준어 문장은 강릉 방언에서 "아버지가 진지를 드신다" 혹은 "아버지가 밥을 잡수신다"로 실현된다. 여기서 주격 조사 가는 단순히 주어를 표시하는 격 표지(Case Marker)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할 뿐, 존대의 기능은 서술어인 잡수신다나 드신다로 이관된다. 이는 조사의 의미적 부담을 줄이고 문장의 구조를 단순화하려는 언어의 경제성 원리가 작동한 결과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강릉 방언에서 나타나는 이가라는 이중 주격 조사의 쓰임이다. 표준어에서는 받침이 있으면 이, 없으면 가를 쓰는 음운론적 제약이 엄격하지만, 강릉 방언에서는 받침이 없는 체언 뒤에도 이와 가를 합친 이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할머니이가 오셨다"와 같은 형태다. 이는 주격 조사의 형태가 불안정했던 중세 국어 시기에서 근대 국어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특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주어를 명확히 부각하려는 강조의 용법이기도 하다. 이때조차 께서라는 형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주격 조사 가는 17세기 근대 국어 시기에 비로소 등장하여 정착된 비교적 새로운 문법 요소다. 그전까지는 이만이 주격 조사로 쓰였고, 존칭 주격 조사의 개념도 현대처럼 엄격하지 않았다. 강릉 방언은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근대 국어의 변화, 특히 께서의 일반화라는 중앙어의 변화를 더디게 받아들였다. 대신 그들은 15~16세기 국어의 특징인 선어말어미 중심의 존대법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발전시켰다. 즉, 강릉 사람들에게 께서를 쓰지 않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굳이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문법적 화용론의 차이인 것이다. 서술어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높일 수 있다는 언어적 자신감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사회언어학적 고찰 친밀감(Solidarity)과 권력(Power) 사이의 줄타기
언어는 사회적 관계의 거울이다. 강릉 방언에서 께서가 가로 교체되는 현상은 단순히 문법적인 효율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강릉 지역 사회 특유의 인간관계 맺기 방식, 즉 친밀감(Solidarity)과 유대감을 중시하는 괸당(친족 및 이웃) 문화가 깊이 개입되어 있다. 사회언어학자 브라운과 길먼(Brown & Gilman)은 대명사와 호칭의 사용이 권력(Power)과 유대(Solidarity)라는 두 가지 축에 의해 결정된다고 분석했는데, 이 이론은 강릉 방언의 조사 사용에도 완벽하게 적용된다.
표준어의 께서는 권력과 거리두기(Distancing)의 언어다. 께서를 사용하는 순간 화자와 청자, 그리고 주어 사이에는 엄격한 수직적 위계가 형성되며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다. 반면 강릉 방언의 가는 유대와 친밀함의 언어다. 강릉은 전통적으로 씨족 중심의 집성촌이 발달하고, 반상(양반과 상민)의 구별보다는 마을 공동체의 결속력이 생존에 더 중요했던 지역이다. 좁은 지역 사회에서 서로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조카인지 뻔히 아는 사이에서, 께서를 사용하여 격식을 차리는 것은 오히려 서먹하고 남처럼 느껴지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강릉의 할머니가 손자에게 "니네 아버지가 집에 있나?"라고 물을 때, 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언어적 제스처다. 만약 "니네 아버지께서 댁에 계시니?"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화자가 청자와 심리적 거리를 두고 있거나, 공적인 관계임을 선언하는 행위가 된다. 강릉 방언에서 가는 존대의 대상을 나의 가족이나 이웃이라는 내부 집단(In-group)으로 끌어들이는 포용의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강릉 방언에는 하오체와 하게체의 중간 단계, 혹은 그 독자적인 변이형인 하우야, 하이 등의 어미가 발달해 있다. 이러한 어미들은 상대방을 높이면서도 친근하게 대하는 강릉 특유의 정서를 담고 있다. 조사는 가를 써서 편안하게 시작하되, 어미에서는 -우야, -지 마이(하지 마라+이) 등으로 끝맺으며 부드러운 권유와 존중을 표하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투박해 보이지만 속정 깊은 강릉 사람들의 기질과 정확히 일치한다. 껍데기(조사)보다는 알맹이(서술어와 어조)에 진심을 담는 것, 그것이 강릉식 예법이다.
반면, 께서가 사용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주로 제사 축문이나 관혼상제와 같은 매우 의례적인 상황, 혹은 타지에서 온 손님이나 공무원과 같은 외부인(Out-group)을 대할 때 께서가 등장한다. 이는 강릉 방언 화자들이 표준어의 문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표준어 문법(Code A)과 방언 문법(Code B)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께서를 남발하는 것은 강릉 사회에서 깍쟁이 혹은 겉도는 사람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가의 사용은 강릉이라는 언어 공동체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이자, 정서적 유대를 확인하는 암호와도 같다.
표준어의 압력과 소멸해가는 문법적 다양성
지금까지 강릉 방언의 주격 조사 께서와 가의 교체 현상을 통해, 이 방언이 가진 문법적 효율성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강릉 방언에서 가의 폭넓은 사용은 결코 문법적 오류나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서술어 중심의 존대법이라는 독자적인 통사 구조와, 형식적 권위보다 내면적 유대를 중시하는 공동체 문화가 빚어낸 고도의 언어적 전략이다. 이 현상은 한국어가 가진 문법적 유연성과 변이 가능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이자, 태백산맥이 지켜낸 언어의 갈라파고스적 특성을 증명하는 사례다.
그러나 오늘날 이 독특한 문법 체계는 심각한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학교 교육과 매스미디어의 강력한 표준어 보급 정책은 방언의 문법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고 교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젊은 세대의 강릉 사람들은 더 이상 할아버지에게 가를 붙이지 않는다. 그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께서를 사용하며, 강릉 방언 특유의 억양은 유지할지언정 그 기저에 깔린 문법 구조는 빠르게 표준어화 되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조사 하나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관계의 문법,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설정하고 감정을 교류하던 강릉만의 방식이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언어의 다양성은 생물 다양성만큼이나 중요하다. 표준어라는 단일 품종만이 남은 언어 생태계는 척박하고 병들기 쉽다. 강릉 방언의 가와 께서 교체 현상은 우리에게 존대법이 고정불변의 규칙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생물임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제라도 이 사라져가는 문법 현상을 텍스트와 음성으로 정밀하게 기록하고 아카이빙해야 한다. 맞고 틀리고의 이분법적 잣대를 거두고, 왜 그들이 그렇게 말했는지를 이해하려는 인문학적 태도가 필요하다.
강릉의 노인들이 구사하는 그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문장들 속에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공동체의 따뜻한 질서가 숨 쉬고 있다. 께서라는 격식의 옷을 벗어 던지고 가라는 편안한 옷을 입혔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그 진솔한 마음. 그것이야말로 강릉 방언이 우리에게 남겨준,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언어의 유산일 것이다. 태백산맥을 넘어오는 바람 소리처럼, 강릉 방언의 이 독특한 울림이 오래도록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