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방언의 친족 호칭어 분화 연구: ‘아재’부터 ‘삼촌’까지, 혈연의 지도를 그리는 언어학적 탐사
‘아재’부터 ‘삼춘’까지
방언 친족 호칭으로 읽는 혈연의 지도
지리·유교 위계가 빚은 의미 확장과 중세어 잔존, 핵가족화로 인한 소멸 위기와 아카이빙의 당위
언어의 지층 속에 각인된 핏줄의 역사와 관계의 기하학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엄마와 아빠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외침이자 타인과 맺는 최초의 사회적 계약이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인식해야 할 세계는 단순히 부모와 자식이라는 수직적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혈연관계, 즉 친족이라는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고 그에 합당한 이름을 불러야만 비로소 한 명의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한국어, 그중에서도 각 지역의 방언에 남아 있는 친족 호칭어는 단순히 가족을 부르는 명칭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한반도라는 좁은 땅덩어리 위에서 씨족 중심의 농경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고안해 낸 정교한 사회적 소프트웨어이자 관계의 기하학이다. 서울 표준어에서 삼촌이나 고모, 이모 정도로 단순화된 호칭 체계는 현대의 핵가족화된 생활 양식을 반영하는 효율적인 도구일지는 모르나, 과거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거대한 혈연 공동체의 내밀한 질서를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 표준어가 제공하는 친족 어휘는 매우 기능적이고 행정적인 성격이 강하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라는 단어는 서열과 크기를 물리적으로 구분할 뿐, 그 안에 담긴 정서적 온도는 미지근하다. 반면 방언의 호칭어들은 그 단어를 발화하는 순간, 화자와 청자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층위를 즉각적으로 환기한다. 예컨대 경상도에서 '아재'를 부를 때의 억양과 서울에서 '아저씨'를 부를 때의 억양은 판이하다. 전자에는 혈연에 대한 복종과 친밀함이 섞인 끈끈한 유대감이 배어 있다면, 후자에는 타인에 대한 건조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이는 언어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유지해 온 '정서의 아카이브'임을 증명한다. 또한, 전통 사회에서 친족 호칭을 정확히 구사하는 능력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지능을 대변했다. 복잡한 촌수를 따져 '당숙'인지 '재종'인지를 가려내고, 그에 맞는 호칭을 부르는 행위는 자신이 이 거대한 핏줄의 지도 속에서 길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성인식과도 같았다. 현대인이 GPS 없이 길을 찾지 못하듯, 방언의 호칭어를 잃어버린 우리는 어쩌면 인간관계의 좌표를 상실한 채 부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연구는 단순한 어휘 수집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의 문법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경상도의 아재, 전라도의 아짐, 제주의 삼춘, 함경도의 아자비 등 각 방언에 산재한 친족 호칭어들은 저마다의 역사적, 음운론적, 사회문화적 배경을 품고 있다. 왜 어떤 지역에서는 아버지의 남동생을 아재라고 부르고, 어떤 지역에서는 작은아버지라고 부르는가. 왜 제주도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삼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단순히 사투리의 뜻을 풀이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산맥과 강으로 단절된 지리적 환경 속에서 각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정의했는지, 그리고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가 지역 토착 문화와 결합하여 어떻게 변주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인류학적 탐사이기도 하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며, 친족 호칭어는 그 사회의 골격을 보여주는 엑스레이 사진과도 같다.
이 엑스레이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지역이 외부의 충격이나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어떤 생존 전략을 취했는지 알 수 있다. 호칭어는 타자를 '우리(We-group)'의 범주 안으로 포섭하거나, 반대로 엄격하게 위계를 나누어 배제하는 정치적 도구로도 작동했다. 함경도 방언의 투박하고 고스러운 호칭은 북방의 거친 환경과 외침 속에서 혈연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방어기제였을 수 있고, 충청도나 전라도의 부드러운 호칭은 넓은 평야 지대에서 이웃과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유화책이었을 수 있다. 즉, 호칭어의 분화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각 지역 공동체가 수백 년간 축적해 온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단어들 속에서 한국인의 의식 심층에 자리 잡은 '피(Blood)'에 대한 집착과 '정(Affection)'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다. 소멸해가는 이 단어들을 붙잡는 것은, 단순히 사투리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한국인의 관계 맺기 방식의 원형(Archetype)을 탐구하는, 매우 시급하고도 본질적인 인문학적 과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방언 호칭어들이 단지 지역 특색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사회문화적 진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어떻게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명명의 행위를 넘어, 정체성과 관계의 위계를 내포한다. 각 방언의 호칭은 해당 지역의 공동체가 어떠한 윤리적 가치관과 사회적 역할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언어적 흔적이다. 본 연구는 한국어 방언에 나타난 친족 호칭어의 다양성을 음운론적, 의미론적 관점에서 심층 분석하고, 급격한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이 소중한 언어 유산을 기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은 사라져가는 단어들에 대한 애도이자,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공동체적 삶의 양식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될 것이다.
사회구조와 지리적 환경이 빚어낸 호칭의 분화: 씨족 사회의 위계와 방언의 보수성
친족 호칭어의 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전통 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씨족 마을의 구조와 유교적 위계질서를 이해해야 한다. 조선 중기 이후 예학이 발달하고 부계 중심의 가족 제도가 확립되면서, 친족을 부르는 말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예법의 영역으로 격상되었다. 나와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 항렬이 위인지 아래인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공동체 내에서의 서열을 정하고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는 필수적인 생존 지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중앙의 예법이 지방의 말초 혈관까지 그대로 이식된 것은 아니다. 각 지역은 자신들의 지리적 환경과 고유한 언어 습관에 맞춰 중앙의 용어를 변형하거나, 혹은 고대부터 써오던 고유어를 고수하는 방식으로 독자적인 호칭 체계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현상은 '언어의 지체(Lag)'와 '토착화(Localization)'의 이중주다. 중앙의 언어가 지방으로 전파되는 데에는 물리적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지방의 언어는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걷거나 과거의 형태를 고집스럽게 유지했다. 특히 씨족 사회에서는 촌수와 항렬이 곧 권력이자 질서였다. 한 마을에서 같은 성씨를 가진 수십 가구가 모여 살 때, 호칭을 잘못 부르는 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사회적 금기(Taboo)를 어기는 행위였다. 조카뻘 되는 사람이 아저씨뻘 되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놓거나 격식 없는 호칭을 썼다가는 문중 회의에서 질타를 받거나 공동체에서 소외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방언의 친족 호칭어는 매우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말이 들어와도 기존의 질서를 깨뜨릴 위험이 있다면 배척당했다. 이는 언어가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안정성을 위해 복무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각 방언의 호칭어들은 수백 년 전의 유교적 위계질서를 박제해 놓은 듯한 엄격함을 띠게 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방언의 '고풍스러움' 혹은 '권위적임'의 실체이기도 하다.
특히 산악 지형이 발달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제한적이었던 경상도와 강원도, 그리고 함경도 지역은 언어적 보수성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이들 지역의 친족 호칭어는 중세 국어의 형태를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5세기 국어에서 아비는 아버지를, 아자비는 아저씨나 삼촌을 뜻했는데, 이러한 어휘적 원형은 서울에서는 사라졌지만 경상도의 아재나 함경도의 아자비라는 형태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는 험준한 산맥이 언어의 급격한 변화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반면 평야가 넓고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은 표준어와의 접촉 빈도가 높아 호칭어의 형태가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마모되거나, 감정적 유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지리적 결정론은 방언의 '폐쇄성'과 '개방성'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백두대간에 가로막힌 영남과 영동 지역은 언어의 유입과 유출이 어려웠기에, 한번 정착된 어휘는 수세기에 걸쳐 변하지 않고 대물림되었다. 마치 갈라파고스 섬의 생물들처럼, 고립된 환경은 언어의 독자적 진화를 가능케 했다. 반면, 금강과 영산강을 끼고 있는 호남과 호서 지방은 물길을 따라 사람과 물자가 빈번히 오갔기에 언어 또한 유동적이었다. 이곳의 친족 호칭어는 엄격한 위계보다는 융통성과 친화력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전라도 방언에서 친척이 아닌 이웃에게도 쉽게 '아짐', '형님'이라는 호칭을 확장하여 사용하는 것은, 평야 지대의 개방적인 농경 문화가 만들어낸 '관계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즉, 산은 언어를 지키고 강은 언어를 퍼뜨렸다. 우리가 지역별 방언의 차이를 느낄 때, 그것은 단순히 억양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발 딛고 살아온 땅의 형상과 역사가 만들어낸 깊은 골짜기와 넓은 들판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다.
또한 친족 호칭어의 분화는 씨족 사회 내부의 권력 구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 마을에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에서는, 옆집 아저씨가 곧 나의 당숙이거나 재종형제인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타인을 부를 때 단순히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과, 촌수를 따져 아재라고 부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아재라는 호칭 속에는 너와 나는 피로 연결된 사이라는 배타적 유대감과, 내가 너를 집안의 어른으로 대우한다는 공손성 전략이 내포되어 있다. 표준어의 아저씨가 혈연관계가 없는 남성에게까지 무분별하게 확장되어 쓰이는 것과 달리, 방언의 친족 호칭어는 철저히 혈연의 범주 안에서 작동하는 폐쇄적인 언어였다.
이 폐쇄성은 역설적으로 공동체의 생존을 담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외부의 위협이나 경제적 곤궁함이 닥쳤을 때, '남'이 아닌 '우리(피붙이)'라는 인식은 상호 부조와 협동을 가능하게 했다. '아재'라고 부르는 순간, 상대방은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줘야 할 의무를 지게 되고, 나는 그를 따르고 섬겨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호칭은 곧 권리이자 의무의 선언이었다. 농번기에 품앗이를 하거나 관혼상제를 치를 때, 이 호칭 체계는 각자의 역할과 위치를 지정해 주는 정교한 매뉴얼과도 같았다. 만약 이 호칭의 규칙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그는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하는 불온한 존재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따라서 방언 속 친족 호칭어는 단순한 명사가 아니라, 그 사회를 지탱하는 헌법과도 같은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촌스러운 사투리가 아니라, 이토록 끈끈하고도 엄격했던 상호 책임의 문화일지도 모른다. 언어가 헐거워지면서, 우리의 관계 또한 책임 없는 가벼운 만남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지역 사회의 내부 구조에서 호칭이 지닌 상징적 위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예컨대 한 마을에서 '아재'로 불리는 이는 단순히 삼촌이라는 촌수 개념을 넘어서서, 공동체 내에서 일정한 책임과 권위를 가진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호칭이 곧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기능을 하였던 것이다. 방언 속 호칭 체계는 관계의 정합성을 언어로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으며, 오늘날처럼 익명성과 단절이 특징인 도시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 관계의 설계도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어휘를 모아 열거하는 식의 접근은 방언 연구의 본질을 놓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방언 속에 숨겨진 이 촘촘한 사회적 관계망을 언어를 통해 해석해야 한다.
지역별 친족 호칭어의 음운론적 어원 분석과 의미론적 확장
이제 각 지역별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친족 호칭어의 사례를 통해 그 어원과 의미의 변천 과정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분석해 보자. 가장 대표적이고 흥미로운 사례는 경상도 방언의 아재다. 표준어 화자들에게 아재는 그저 촌스러운 아저씨를 뜻하는 말로 들릴지 모르나, 경상도 내에서 아재는 아버지의 남동생, 즉 결혼하지 않은 삼촌이나 결혼한 작은아버지를 아울러 이르는 매우 정격적인 호칭이다. 어원적으로 아재는 중세 국어의 아자비에서 기원한다. 아자비는 알다시피 아비(父)에 지소사(작다는 뜻의 접미사)가 결합하거나, 혹은 작은 아버지를 뜻하는 아(亞)와 아비(父)가 결합했다는 설 등 다양한 어원설이 존재하나, 핵심은 아버지에 준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이 아자비가 음운 축약 과정을 거쳐 아재비가 되고, 다시 탈락 현상을 통해 아재로 정착되었다. 경상도에서 아재는 항렬이 같은 방계 친족 남성을 부를 때 광범위하게 쓰이는데, 이는 촌수 계산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가 일상어에 깊이 침투한 결과다.
경상도 방언 특유의 성조(Pitch Accent) 또한 '아재'라는 단어의 정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경상도 말은 음의 높낮이가 의미를 변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아자비'라는 3음절 단어보다는 '아재'라는 2음절 단어가 성조를 싣고 강하게 발음하기에 훨씬 경제적이다. 보통 '아'에 고조(High pitch)를 두어 강하게 부름으로써, 청자의 주의를 즉각적으로 환기시키고 화자의 존중과 친밀함을 동시에 전달한다. 또한 '아재'는 단순히 친척을 부르는 말을 넘어, 마을 공동체 내에서 아버지 항렬에 속하는 모든 남성을 아우르는 사회적 호칭으로 확장된다. 이는 집성촌 문화가 강한 영남 지역에서 '남의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와 동급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유교적 윤리가 언어적으로 실천된 사례다. 따라서 경상도의 '아재'는 혈연의 경계를 넘어 공동체의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적 기호(Code)로 읽어야 한다. 이 단어 하나에 영남 유림의 예법과 투박하지만 속정 깊은 경상도 사람들의 기질이 모두 녹아 있는 것이다.
전라도 방언에서는 아짐이나 아지매라는 호칭이 두드러진다. 이는 아주머니의 방언형이지만, 친족 관계에서는 고모나 이모, 혹은 숙모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흥미로운 점은 전라도 방언 특유의 장음과 억양이다. 아~짐 하고 길게 부를 때, 그 소리 안에는 단순한 호칭을 넘어선 정서적 의존과 친밀감이 묻어난다. 음운론적으로 아주머니는 아질머니 혹은 아자미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세 국어에서 아자미는 여성을 뜻하는 어미가 붙은 형태로, 아자비와 대칭을 이룬다. 전라도 방언은 이러한 고어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부드러운 유성음화와 모음의 장단 조절을 통해 관계 지향적인 화용론적 기능을 강화했다.
전라도의 '아짐'은 가사 노동의 중심축이자, 집안의 대소사를 실질적으로 주관하는 여성들에 대한 헌사(Tribute)와도 같다. 부엌과 밭에서 억척스럽게 일하며 가족을 건사했던 고모와 이모들에게 '아짐'이라는 호칭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고단한 삶을 공유하는 동지애의 표현이었다. 특히 전라도 특유의 구성진 억양으로 "아짐~" 하고 부를 때, 그 말꼬리에는 "나 좀 봐주소", "맛있는 거 좀 주소"와 같은 응석과 기대감이 깔려 있다. 이는 엄격한 격식보다는 끈끈한 정(情)을 우선시하는 호남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 또한, '아짐'은 혈연관계를 넘어 동네 이웃 여성들에게도 흔히 쓰이는데, 이는 '남'을 '가족'으로 확장하려는 전라도식 포용력의 발로다. 밥 한 끼라도 같이 나누어 먹으면 식구가 되는 그들의 정서 속에서, '아짐'은 타인을 내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이처럼 전라도의 호칭어는 논리적 위계보다는 감성적 유대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다.
시댁이 전라도 광주여서 광주에 자주 가는데, 양동시장의 한 가게에서 어머님께서 처음 보는 상인에게 무심코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아짐, 오늘 코다리 좀 묵을만한가요?” 가게 주인은 웃으며 “응그라제~ 오늘 것 잘 들었어라. 맛 좀 봐보소. 덤 좀 얹어줄게잉.” 하고는 한 점 더 집어 준다. 이 짧은 대화에는 전라도식 호칭의 ‘확장’ 논리가 정교하게 작동한다. ‘아짐’은 원래 친족 여성(고모·숙모·이모)을 가리키는 범주에서 출발했지만, 시장이라는 공동체 공간에선 혈연을 넘어 ‘우리 편’으로 포섭하는 호명으로 쓰인다. 표준어 ‘사장님/아주머니’가 직함과 역할을 불러 거리를 확보하는 호칭이라면, ‘아짐’은 정서적 유대와 상호부조의 기대를 호출한다. 그 결과 정보(“오늘 것 잘 들었다”)가 먼저 나오고, 협상(맛보기·덤)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즉, ‘아짐’은 가격 흥정의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문법이다. 전라도 평야에서 발달한 개방적 농경 문화가 타인을 친족 범주로 확장해 온 역사적 습속이 일상의 언어 습관으로 살아 있는 장면이다.
제주도 방언의 삼춘은 한국 방언학에서 가장 독특하고 연구 가치가 높은 사례다. 육지에서 삼촌은 아버지의 형제(3촌)를 뜻하는 촌수 계산 용어이자 남성에게만 국한된 호칭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삼춘이 성별을 초월하여 쓰인다. 남자 어른도 삼춘이고, 여자 어른도 삼춘이다. 심지어 혈연관계가 아닌 이웃 어른에게도 삼춘이라 부른다. 이는 제주의 척박한 자연환경과 괸당 문화에서 기인한다. 거친 바다와 바람에 맞서 싸워야 했던 제주 사람들에게 남녀의 성차나 엄격한 촌수 구분보다는, 생존을 위해 서로 돕고 의지하는 수평적 연대가 더 중요했다. 따라서 남녀 구분 없이 가장 친근하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삼춘의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제주 방언의 '삼춘'은 성별과 촌수를 무너뜨리는 파격적인 언어 실험의 결과물이다. 육지의 유교 문화가 수직적 질서를 강조했다면, 제주의 괸당 문화는 수평적 연대를 지향했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남자들이 밭을 갈거나 배를 타는 등, 남녀 모두가 고된 노동의 주체였던 제주 사회에서 성별을 엄격히 가르는 호칭은 비효율적이었다. 누구든 나보다 어른이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삼춘'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존중과 친밀함을 표했다. 이는 '3촌'이라는 수학적 거리가 '0촌'에 가까운 심리적 거리로 압축된 현상이다. 또한 '삼춘'이라는 호칭은 4.3 사건과 같은 비극적 역사 속에서 서로를 보듬고 위로했던 공동체의 기억을 담고 있다. 낯선 사람도 '삼춘'이라 부르는 순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밥상에 숟가락 하나를 더 얹어주는 제주의 환대 문화는 이 단어 하나에 집약되어 있다. 즉, 제주의 '삼춘'은 단순한 친척 호칭이 아니라,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의 언어이자 평등의 언어인 셈이다.
북방 방언권에 속하는 함경도에서는 아바주, 오마니, 또는 큰아바니, 큰오마니와 같은 표현들이 여전히 사용되며, 이 단어들은 중세 국어의 존칭 어미와 접미사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특히 ‘큰’이라는 수식어가 조부모를 뜻하는 데 사용되는 방식은, 단어 자체가 위계의 언어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지 친족의 구분을 위한 호칭이 아니라, 연령과 위계에 따른 사회적 질서를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각 지역의 방언은 중앙어가 잃어버린 어휘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거나, 혹은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의미를 변용하며 진화해 왔다. 이 단어들을 분석하는 것은 한국어의 계통도를 그리는 작업인 동시에, 한국인의 의식 심층에 깔린 가족주의의 원형을 발굴하는 작업이다.

핵가족화와 언어 소멸의 시대, 호칭어 아카이빙의 철학적 당위성
우리는 지금 유사 이래 가장 급격한 가족 형태의 변화를 겪고 있다. 대가족 중심의 집성촌은 해체되었고, 4인 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대세가 되는 시대로 진입했다. 이러한 사회 구조의 변동은 언어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복잡하고 정교했던 방언의 친족 호칭어들은 설 자리를 잃고 빠르게 소멸해 가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당숙, 재종, 6촌 형님과 같은 단어는 외국어나 다름없다. 그들에게는 오직 엄마, 아빠, 그리고 표준어화된 삼촌, 이모, 고모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재나 아짐, 삼춘이 가졌던 그 풍부한 문화적 맥락과 정서적 뉘앙스는 텍스트 교과서 속의 죽은 단어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시대의 흐름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호칭어의 단순화는 관계의 빈곤화를 초래한다. '아재'나 '당숙'이라는 말이 사라지면, 그 단어가 지칭하던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헐거워지고 결국 끊어진다. 현대인이 겪는 고독과 소외는 어쩌면 우리를 연결해주던 언어의 그물망이 찢어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이름 모를 먼 친척이라도 고유한 호칭으로 부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챙겼지만, 이제는 '그쪽', '저기요' 같은 익명의 호칭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언어의 해상도가 낮아지면서, 타인을 인식하는 우리의 감수성 또한 무뎌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어 몇 개가 아니라, 그 단어들이 품고 있던 공동체의 온기와 타인에 대한 관심이다. 따라서 사라지는 호칭어를 기록하는 일은 박물관에 유물을 전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관계의 원형질을 복원하는 작업이며, "우리가 남이 아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언어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다.
언어의 소멸은 곧 세계관의 소멸이다. 방언의 친족 호칭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타인을 인식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 중 하나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갔던 혈연의 지도, 그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해주던 정체성의 좌표가 단순화되고 흐릿해지는 것이다. 아재라고 부를 때 느껴지던 묵직한 존경심과 친근함의 이중주, 삼춘이라고 부를 때 느껴지던 성별을 초월한 인간적 연대감은 표준어의 매끄러운 어휘로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정서적 자산이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방언 친족 호칭어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학적 데이터 수집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일종의 '디지털 노아의 방주'를 짓는 일과 같다. 언젠가 인류가 다시 공동체의 가치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 혹은 AI와 같은 기술이 인간의 미묘한 감정과 관계를 학습해야 할 때, 이 방언 데이터들은 대체 불가능한 원천 소스가 될 것이다. 표준어 데이터만으로는 학습할 수 없는, 한국인 특유의 '정(情)'과 '눈치', '위계와 파격'의 알고리즘이 이 호칭어들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정서적 교감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언어가 품고 있던 풍부한 감성의 어휘들을 끄집어내어 미래의 언어 자원으로 재가공해야 한다. 호칭어 아카이빙은 과거를 향한 회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삭막한 개인주의가 극에 달했을 때, 우리가 다시 서로를 따뜻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을 기억해 내기 위해서라도, 이 작업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아카이빙이자, 인문학적 구조 활동이다. 각 지역의 노년층 화자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는 호칭어의 미세한 발음과 용법, 그리고 그 단어가 쓰이던 구체적인 상황을 채록해야 한다. 텍스트로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음성 데이터와 구술 생애사를 결합하여 입체적인 기록을 남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단어들 속에는 우리 조상들이 척박한 땅에서 서로를 어떻게 부둥켜안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삶의 지혜와 태도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방언 호칭어의 기록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언어 문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전통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승과 재해석을 통해 현재와 접속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 삼춘처럼 관계의 본질에 주목한 호칭 체계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소외와 고립의 문제에 새로운 공동체 언어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비록 그 단어들이 일상 속에서 활발히 사용되기는 어려울지라도, 그 의미와 맥락을 복원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언어의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방언의 친족 호칭어를 기록하는 일은, 허물어져가는 우리 존재의 옛집을 도면으로나마 남겨두는 숭고한 작업이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먼 훗날에도 한국인이 관계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 민족인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은 곧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와 ‘누구와 함께였는가’를 언어로 증언하는 행위이며,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다시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제 그 질문에 응답할 시간이다.